생각해보니 전역하고 나서 아직도 가끔 주기적으로 연락을 하는건 이 친구 밖에 없는 것 같다.
주기적으로 연락이 된다는게, 매년 내 생일이나 신정 즈음이 되면 이 친구한테서 전화나 카톡이 오는건데, 정작 그렇게 연락은 하면서도 서로 '내년에는 만나자' 라는 약속을 지켜본적은 없는 것 같다.
매년 이 놈이 미뤘던 것 같은데, 뭔가 여유가 없는 듯한 눈치이기도 했고.
그랬었던 것 같다.
섹킹이랑 나는 동기였는데, 8사단은 선임/동기/후임 나누는 기준이 조금 독특했다.
앞뒤로 1달은 동기가 되는 구조였는데, 예를 들어, 나는 4월 군번이니 3월 군번과 5월 군번이 나와 동기가 되는거였다.
섹킹은 3월 군번이었으니, 2월 군번과 4월 군번이 동기가 되는거였고.
그러면 나와 동기인 5월 군번은 3월 군번한테는 후임이 되는 그런 구조였으니.
애매했지.
섹킹은 중대 모든 사람들이 섹킹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그 별명이 시작된게 참 웃긴게 이 친구가 자대 배치를 받고 처음날에 선임들이 뭘 잘하는지 물어봤는데, '저는 섹스를 잘합니다!!'라고 했다는게 섹킹이라는 별명의 유래였다.
키는 170cm 조금 넘었었나? 그랬고, 마른 편 이었는데 간식을 좋아해서인지 올챙이 배처럼 배만 조금 나오는 체구였었다.
나랑 동갑이고 성격이 굉장히 좋은 애였는데, 중대에서 항상 스마일 상태를 디폴트 하고 있었던 몇 안되는 인원이기도 했었다. (사실 특별히 나랑 친해서 나한테는 그랬었을 수도 있고, 근데 암튼 친절한 친구인건 맞았다)
토목과를 다니다가 입대했다고 했었고,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이등병 언젠가쯤 헤어졌었던걸로 기억한다.
사실 섹킹과 나는 소대가 서로 달랐다.
이등병 때 나는 3소대 소속이었고, 섹킹은 중대포반 소속이었으니, 서로 생활관도 달랐고.
그래서 이등병 때는 가끔 PX 가거나, 작업 할 때라던가, 뭐 잡일 할 때, 전투화를 닦을 때 마주치는 정도였고, 서로 그 짧은 시간에 수다떨면서 친해졌었는데, 흡연자가 아니면서도 흡연할 때 항상 밖에 나와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만큼 수다를 좋아했던 놈이었다)
내가 작전 계원이 되면서 소대를 중대본부로 옮겼고, 중대본부가 포반과 같은 생활관을 쓰는 것 때문에 결국 같은 생활관이 되면서 더 친해지게 됐었지.
특히나 행정계원들이 유독 3월, 4월 군번들이 많았어서, 나중에는 생활관에 동기가 참 많았었던걸로 기억한다.
섹킹과 상병 때 한번 휴가를 기간 맞춰서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같이 술을 마시다가 같이 헌팅포차를 가기도 했었고, 그러다가 나와서 이름 모를 동네를 가기도 했었다. (그 동네 이름이 아직도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암튼 거긴 두 번 다시 가보진 않았다)
같이 헌팅포차를 갔다가 느낀거였는데, 부대에서와는 다르게 섹킹이 약간 숫기가 없어보이 듯 했다.
부대에서는 좋은 성격 탓인지 중대에서 소위 말하는 '핵인싸'였었으니까, 그 부분이 좀 의아하기도 했었는데, 생각해보면 군대 내에서와 군대 밖에서의 성격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뭐 꼭 군대가 아니더라도 온라인에서와 오프라인에서 성격이 서로 딴판인 사람들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곤 하니까.
암튼 그 부대에서의 핵인싸였던 덕에 주말마다 몰래 치킨에 맥주나 보쌈에 소주 시켜서 순찰로 철조망 너머로 받고, 현금 계산하는 인싸 모임에 섹킹도 속해있었는데, 가끔 술냄새 폴폴 풍기며 부대 들어와서 낮잠 자던 모습이 기억나는 듯 하다. (군부대 근처 보쌈집이나 치킨집들은 서비스로 그렇게 철조망 까지 조금 언덕을 타고 올라와서 배달을 해주기도 했었다)
상병 무렵부터 이제 눈치 안보고 PX 다닐 수 있는 시기가 되면서 섹킹과 나는 PX에 자주 같이 갔었는데, 군대에서는 과일을 구경하는게 불가능한 탓에 매일 비타민 보충한다는 핑계로 Dole에서 나오는 과일 요거트를 매일 챙겨먹곤 했었다.
사실 군대에서 왜 과일은 보급으로 안나왔었는지 이해는 안되었는데, 전 부대 공급할 과일을 군단에서 구매해서, 그걸 사단으로, 사단에서 연대로, 연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보급 과정을 생각하면, 그리고 그 보급 기간을 생각하면, 그 기간 동안 과일은 다 썩어버릴 것이 100% 확실하다는 결론에 도착하게 된다.
암튼 그런 환경 탓인지 우리는 Dole 과일 요거트 팸이기도 했고, 가끔 끌레도르 콘 팸이기도 했고, 아주 가끔은 냉동면이나 슈넬치킨 팸이 되기도 했었다.
작전 계원 업무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그렇게 짬짬 시간을 내서 섹킹과 PX는 꾸준히 갔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꾸준히 PX로 출첵을 하면서, 우리는 더 짬을 먹었고 어느새 병장을 달았었는데, 대부분 그렇겠지만 병장 즈음이 되면 이제 사회 나가서 뭘 해야하나 라는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사실 나는 대학 졸업하고 뭐라도 하면 되겠지라는 식이었고, 섹킹은 유독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그 성격 좋던 놈이 마치 인생 암흑기 인 마냥 한참동안 우울해져 있기도 했었다.
나가서 뭐할까?
엄청난 고민이기도 하고, 보통은 아무런 답이 없는 상태로 나가는게 대부분이겠지.
내가 말년 병장 때 나보다 나이 몇살 많던 2소대장 중위 조차도 대학에서 배운게 없어서 군대에 그냥 짱박혀서 일이라도 할 생각이라는 듯 얘기하기도 했었으니까.
그게 간부건, 사병이건, 전역의 시간이 다가올 수록 기쁨과 동시에 그 무게감도 다가왔었던 것 같다.
아마 섹킹은 그 무게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던게 아닐까.
그 마지막 5개월 동안.
전역하고 실제로 만난건 술 마시러 한번 만났었는데, 그 후로는 매년 한번씩 전화나 카톡이 오곤한다.
그때보다 살이 많이 쪘다고 하는데, 분명 간식 많이 쳐먹어서 그랬으리라 싶다.
일을 한다고는 했는데, 정확히 무슨일 하는지는 물어보지는 않았다.
다만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많다고 했었던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 우리 언제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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