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랄까.
특기 1111을 받고 소총병으로 자대를 배치받고 지내나보면, 소총병 특기를 받고도 보직은 여러개로 나뉜다는걸 알게되는데, 그 보직 중에서도 제일 힘든 것들에 대해 듣게된다.
예를 들면 일반 소총 분대에서도 K-3 사수는 제일 힘들다고 하는데, 다른 것 보다 소총이 다른 화기들에 비해 무거운 이유가 전부다. (그리고 생각보다 커서 행군 할 때 들고 다니는게 좀 까다롭다는 이유도 있고)
중대본부 포반에서도 제일 어려운 보직이 있었고.
중대본부 계원분대도 제일 하지 말라는 보직이 있었는데, 그게 작전계원 이었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제일 업무량이 많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 두번째 이유는 계원 중 훈련을 같이 뛰어야 하는 보직이었다는 점 이었다. (물류, 인사, 병기, 시설병등은 훈련 때 설영대로 빠지는데, 작전, 통신병은 훈련을 같이 뛰어야 했다.)
쉽게 말해 평소에도 바쁜데, 훈련도 뛰어야 하고, 훈련을 다녀오면 또 업무 때문에 바빠지는 그런 계원이라는거지.
그래서 오늘은 ㅅㅈ형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ㅅㅈ형을 은인이라고 해야하나, 그 반대라고 해야하나.
ㅅㅈ형은 중대 작전계원이었는데, 정확하게 보직을 말하면 교육/작전/화생방 계원 이었다.
나보다 나이는 1살 많았고, 키는 170cm이 조금 안됐던걸로 기억한다.
날카로운 인상이었는데, 날카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글쎄. 업무적으로는 날카로웠다고 해야할까.
처음 자대배치 받을 때는 몰랐지.
그 사람이 사수, 내가 부사수가 될지.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안 지나서 ㅅㅈ형이 나랑, 같은 생활관 다른 동기 하나를 불렀다.
권ㅅㅅ이라고 강원도 감자 냄새가 날 것 같이 생긴 시커먼 동기였는데, 나는 홍대를 다니다가 왔고, 그 권ㅅㅅ이라는 애도 인서울에 들어봤을법한 대학을 다니다가 왔다고 했다.
ㅅㅈ형은 그래서 부른거라고 했다.
부사수를 슬슬 염두에 두고 후보를 물색한거지.
ㅅㅈ형도 나와 같은 학교였다.
다만 나는 서울캠퍼스였고, ㅅㅈ형은 지방캠퍼스 였다는 차이 정도.
ㅅㅈ형이 담배를 피면서 작전계원은 체력도 좋아야 하는데, 머리도 좋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너네 둘을 부사수 후보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간단하게 얘기를 마치고 우리를 돌려보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내가 ㅅㅈ형 부사수가 되기까지 5개월 정도 시간이 걸렸었다.
교육/작전/화생방 계원은 평시에는 교육계원의 역할을 했다.
교육계원의 역할은 중대가 하루하루 뭘 해야할지 일정을 짜고, 그걸 보고하고, 그걸 감독해야 했다.
만약 다음주에 각개전투 훈련이 있다고 한다면, 그 각개전투 훈련 방법과 목적, 그리고 각개전투 장소에서 정확하게 어떤 훈련을 할 것인지, 어떤 교보재들이 필요한지를 토대로 훈련계획서를 쓰는 것도 교육계원의 역할이었다.
만약 훈련에 공포탄이 필요하다면, 간부 하나 꼬셔서 탄약반장에게 탄이 필요하다는 요청서를 보내서 승인받고, 탄을 수령하는 것도 교육계원의 역할이었다. (사격이 있을 경우 실탄을 수령하기도 했고)
그 모든 일정들은 중대장도 아니고, 행보관도 아니고, 일개 소대장들도 아닌 교육계원이 전부 관리했다.
작전계원의 역할은 중대가 훈련을 나갈 계획이 있다면, 대대 작전실에서 그 훈련에 대한 정보를 얻어서 그걸 토대로 훈련지역의 지도와 상황판을 만들어야 했고, 훈련 시에는 중대장 옆에 붙어서 우리가 현재 위치한 좌표에 대한 정보를 보고해야했다. (그리고 중대와 같이 행군도 해야하는건 덤이었다)
화생방계원의 역할은 중대의 화생방 보호구에 대한 관리 및 화생방 상황이 터졌을 시 화생방 감지 장비를 순찰로에 설치하고 화생방 공격 발생 시 감지 상황을 보고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화생방 집체교육이 있으면, 참가를 해야했고)
따지고 보면 교육계원 역할이 60% 작전계원 역할이 30% 화생방계원 역할이 10% 정도 였던 것 같다.
처음 이걸 들었을 때 ㅅㅈ형이 슈퍼맨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혼자 저걸 다 했을까.
그리고 나도 그 슈퍼맨이 되어버린거지.
그렇게 바빠서 였는지, 작전계원의 장점과 단점은 뚜렷했다.
단점은 항상 바쁘다는거였고, 장점은 아무도 안 건드린다는거였다.
그래서 아무도 ㅅㅈ형을 건드리지 않았고, 작전계원이 된 후에 아무도 날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생각보다 일이 바빠서 전역하기 전까지 많이 바빴다.
그래서 ㅅㅈ형을 은인이라고 해야할지, 그 반대라고 해야할지 헷갈리는거겠지.
그래도 좋은 형이었다는 사실은 맞을 것 같다.
연대에서 3개월에 한번씩 중대를 교체하면서 ASP라는 탄약고 경계근무를 하러 가게 되는데, 이 경계 근무를 하러 가면 3개월 동안 중대를 비우고 떠나게 된다.
말 그대로 3개월 동안 철책 경계근무를 하러 가는거다.
내가 이병 4개월이 되었을 때 우리는 ASP로 떠났고, 1달 정도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데 내 작전계원 발령이 결정되었다.
그 날 나는 중대본부 생활관으로 짐을 옮겼고, 그 날부터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근데 인수인계라고 해봐야 ASP에서 인수인계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었다.
사실 인수인계라는게 직접 실습을 해보면서 해야 학습이 되지, 그냥 얘기 듣는걸로 될리가 없지.
그래서 하루 일과 중 인수인계라고 하면 1시간 정도 하다가 우리는 막사 외부에 조그맣게 마련된 플스방에서 위닝 일레븐을 주로 했었다.
ㅅㅈ형은 맨유를 주로 했고, 나는 인터밀란을 주로 했었다.
ㅅㅈ형은 베르바토프라는 공격수를 상당히 잘 썼는데, 하도 얄밉게 플레이해서 한번은 내가 백태클을 걸어서 부상으로 그 선수를 나가게 한적이 있었다.
군 생활 중에 ㅅㅈ형한테 갈굼을 당한건 그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던걸로 기억한다.
ASP 생활을 끝내고 대대로 돌아왔을 때 ㅅㅈ형은 말년이었고, 나는 일병이 되어있었다.
ㅅㅈ형은 한창 일을 안 할 시기였고, 나는 한창 일을 할 시기였던거지.
그래서 ㅅㅈ형은 구두로 인수인계 다 했으니, 직접 해보면서 물어볼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하루에도 열 번 이상은 서로 다른 질문들을 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멘붕이었으니까.
행정반에는 PC가 2대 있었는데, 1대는 다른 계원들이 교대로 사용하는 공용PC 였고, 나머지 1대는 작전계원 전용이었는데, 행정반 제일 구석, 행보관 자리 바로 옆에 그 PC가 있었다.
나는 그 작전계원 PC에 오전 8시 부터 오후 6시 이후까지 항상 바쁘게 뭔가를 하면서 앉아있었다.
생각해보니 ㅅㅈ형에 대해 기억나는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전역하고 나면 학교에서 보자고 했었다.
캠퍼스에서 서울로 수업들으면서 취업준비하러 오곤 했으니까.
근데 ㅅㅈ형이 전역하고, 정말 모르는게 있어서 물어보려고 전화했던게 마지막 이었다.
사실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사람이다.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사실 만나서 무슨 얘기를 꺼낼지, 얘기를 해봐야 5분이면 할 얘기 끝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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