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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tion/Military Note

by Mr. Lazy 2021. 10. 1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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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송트럭은 답답하게 달린다.

답답하게 달려서 그런지 바람을 맞으면서도 졸렸다. 

근데 졸면 안된다고 한다. 

손잡이 놓치면 떨어질 수 있다고. 

시골길들을 따라 달리다보니 연대에 도착했다. 

연대장 신고를 한다고 했다. 

연대는 시설이 좋아보였다. 

행정병 말로는 뜨거운 물도 잘 나온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뜨거운 물로 샤워해본지 1달이 넘었다. 

내 맘대로 뜨거운 물 맘껏 쳐맞으며 샤워하는게 그렇게 그리운 순간이 될줄이야. 

하다못해 찬물로 샤워해도 제대로 된 샴푸나 바디워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타임 비누는 뭔가 씻고나면 피부가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 든다. 

 

연대장 신고식을 간단하게 했다. 

대령 아저씨가 나와서 뭐라 하는데, 뭐라 했는지 기억은 안난다. 

이제 대대별로 줄을 맞춰서 서라고 한다. 

무거운 더블백을 들고 줄을 맞춰서 선다. 

나는 2대대로 간다고 했고, 7중대에 간다고 한다. 

훈련소에서 그나마 같은 생활관이었던 친구들 모두 여기서 전부 흩어진다. 

연대 행정병이 담배 피우냐며 디스 한개비를 줬다. 

얼마만에 제대로 피워보는 담배일까. 

이거 한대를 내가 혼자 다 필 수 있다는 것도.

감격스러운거지. 

어지러운거고. 

그렇게 어지러운 상태로 다시 군수송차량에 올랐다. 

 

대대에 도착했다. 

이제 대대장 신고를 한다고 한다. 

대대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행정병이 믹스커피를 한잔 씩 가져다 줬다.

밖에서 거들떠도 안보던 믹스커피. 

설탕 많이 들어가서 건강에 안 좋다고 안 먹던 믹스커피.

먹고 나면 입 건조해져서 안 먹던 믹스커피.

담배 피면서 마시면 입에서 똥내 난다고 안 먹던 믹스커피.

맛있었다. 

맥심. 

 

대대장은 참군인처럼 생겼었다. 

군생활 하다보면 참군인 같은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딱 그런 타입. 

그냥 평범한 40-50대 아저씨 같은데, 몸은 좋은 것 같은 그런 아저씨. 

연대에서 여기로 10명 정도 왔다. 

여기서 또 내가 속한 중대로 나 포함 2명이 간다고 한다.

대대장이 군생활 잘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 

당연히 잘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렇게 면담을 끝내고 나온다. 

 

대대로 올라가는 언덕 밑에서 대기하라고 한다. 

행정병 하나가 동행해서 기다려준다.

이제 각 중대에서 선임들이 데리러 올거라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행정병이 디스 한대를 피라고 준다. 

또 담배 한대를 핀다. 

중대에서 왠 뚱뚱이 2명이 왔다.

우리 중대에서 왔다고 한다.

상병 2명이었다.

따라간다.

언덕 밑으로 가니 내가 있을 중대가 있었다.

담배 피냐고 물어보더니 담배 한대를 더 준다.

디스였다.

담배를 몰아피니 입안이 쓰다.

이제 행보관 면담을 한다고 한다.

행정실에 가서 앉아있으니 행보관이 들어온다.

마리오 끝판왕 쿠퍼같이 생겼다. 

왠 50대 중반 정도 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30대 중반이라고 한다.

지금 내 나이라는건데. 

군인들은 삭는게 맞는 것 같다. 

 

행보관이 너희는 네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본다.

아무도 대답을 못한다.

하지만 너네가 전쟁에 나가서 옆에 전우가 죽는걸 본다면, 너넨 다 제쳐두고 도망갈거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너희들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이기적이지 않은 마음으로 군생활 잘하라고 한다.

근데 나도, 내 동기들도, 내 선임들도, 후임들도.

그리고 행보관도 전쟁을 겪진 않았다. 

 

3소대로 배정을 받았다.

전입신고 합니다! 이병 XXX! 3소대로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라는 건 안했다. 

그냥 허리 곶게 펴고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몇몇은 원숭이 보듯 바라보는 것 같다.

담배 태우냐고 한다. 

핀다고 했다.

담배부터 한대 피자고 한다. 

보헴시가를 받았다. 

여전히 입은 쓴데, 디스보단 나았다.

그 짧은 하루 동안 디스는 이미 맛없는 담배가 되어있었다. 

담배를 피고 들어가니 훈련병 냄새가 난다고 우선 씻으라고 한다. 

일병 하나가 동행해서 샤워를 한다.

자대에서는 타임 비누를 안 쓰고, 사제 샴푸와 바디워시를 썼다.

향이 좋았다. 

근데 뜨거운 물은 안 나왔다. 

 

같이 샤워한 일병이 더블백에 있는 내 짐을 다 풀어서 주기를 해준다. 

내 이름을 큼지막하게 쓴 그것들을 모두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린다.

생각해보니 5주 동안 세탁기도 구경을 못했었다. 

이미 해는 졌고, 우리는 전투화를 닦으러 나갔다. 

전투화를 닦고 들어오니 얼마 안 있어서 점호를 했다. 

점호를 하는 내내 건너편 상병과 병장이 나를 웃기려고 한다. 

웃음을 참으려고 하는데, 계속 웃음이 나온다. 

근데 참아야는 하니까, 이상한 웃음이 된다. 

그 괴기스러운 웃음을 끝내고 나니 당직사관 점호는 끝나고 이제 생활관 점호를 한다. 

신고식?

그런거 안했다. 

그냥 누구 왔다 이 정도였다. 

점호 끝나고 10시가 되기 전에 밖에 나가서 담배를 한대 더 태운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연등이 가능하다고 한다. 

연등 하는 날은 12시까지 티비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야식도 먹을 수 있다. 

10시가 되어 문을 잠그고 나니 다들 과자를 까고, 라면을 들고 라면기계로 향한다. 

나는 오랜만에 온갖 과자를 다 먹었다. 

다음날 속은 안 좋았는데, 뭐 어쩌냐 그리웠던걸. 

밖에서 거들떠도 안 보던 과자들.

포스틱, 오사쯔, 콘치즈, 홈런볼, 양파링, 새우깡, 자갈치 등등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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