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부터 인터넷 보면 이 '설거지론'이라는게 자주 보이는데, 자주 보이는 정도가 늘어나면서 내 관심도 늘어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게 대체 뭔가 알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이 설거지론 이라 불리는 현상이라는게 뭐 특별나게 지금와서 생겨난 얘기도 아니고,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려니 있어왔던 얘기들인데, 이게 지금 와서 -론, -역학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여지면서 하나의 정론처럼 빠르게 퍼져나가는걸 보고 있자면, 그만큼 '이 설거지론의 피해자 라는 집단이나, 잠재적으로 그럴 가능성들이 있는 집단의 분노가 쌓이고 쌓여서 화병나기 직전이었던 거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내가 본 현상이라는건 그것 보다는 오히려 온라인이라는 공간 특성 상 펼쳐지는 상대에 대한 조롱과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식의 선 넘는 드립 등이 대부분 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뭐가 안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구태여 열지 않으려고 했던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그냥 열어버린게 아니라 지나가다 발로 차버린 모양새랄까. 사실 관조적인 투로 그냥 열거해놨어도 당사자는 충분히 현타 올 내용인데, '굳이 자극적으로 조롱해가며 선 넘는 드립까지 난무할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 조롱하는 투를 보고 있자니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한번 정리는 해봐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녀성이라는걸 설거지론에 끼워맞추는 부류도 있는데, 이건 약간 플러스 옵션 정도의 요소겠고, 가장 중요한건 일명 '퐁퐁남'이라 불리는 남성이 결혼생활에서 얻어야 할 것들을 취하고 있는가 여부에 대한 것인데, 설거지론을 설파하며 이를 조롱하는 집단에서 내세우는건 설거지 당한 이상 그 '얻어야 할 것'들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추정에서 시작되는거고, 이미 그 추정을 뒷받침 할 아주 많은 사례들이 이전부터 인터넷을 도배해왔기에 이에 대한 반박이 쉽지는 않아보인다. 간단하게 혼자 일 하면서 한달 10만원 좀 넘게 용돈 받는 아빠로 살아가는 모습이라던가, 그 용돈을 어떻게 적게 줄지 토론하는 주부들의 톡 캡쳐라던가, 가정을 위해 취미활동까지 제제 받는 모습들, 섹스리스, 용돈 모아서 플스 샀는데 그거 하나 샀다고 지랄발광하는 아내의 모습, 심지어 짜증난다고 플스를 물 받은 욕조에 쳐박아 놓은 모습도 있었고, 설빙 찍고 빕스 갔다가 카페에서 수다 떨면서 남편 직업, 시댁 욕 하는게 일상인 -맘들 등등. 사실 이 정도는 그냥 풍자에 가깝고 실질적인 사례들을 보면 좀 더 충격스럽거나, 좀 더 자극적이거나, 좀 더 비참한 결말이 있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외도라던가, 친자 확인 불일치라던가, 돈에 관련된 온갖 추잡한 갈등이라던가. 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축복의 글을 쓰는 경우는 없으니 이런 것들이 오히려 조명을 받기야 하겠지만, 암튼 그걸 알아도 꽤나 충격적인 내용들도 있고.
뭐 이런 경우도 있겠고, 저런 경우도 있겠지, 그걸 전수 조사해서 통계적으로 이러이러하니 설거지론 성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또 미친짓이기도 하다. 그런 정성적인 데이터가 요구되는 통계가 꼭 진실을 담으리란 법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이 설거지론이라는 것 자체가 시작부터 일반화 할 수 없는 영역이고, 그건 뭐 이를 설파하는 집단에서도 인지는 하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다만 대부분의 조롱이 그렇듯이, '니가 아니면 아닌거지, 니 얘기 아니면 그거에 부들부들 댈 필요는 없지 않느냐'라는 답 없는 대응에 휘말려 들 만큼 자극적으로 찌르고 있으니, 사실 단순한 논리로 이게 이렇게 퍼지고 퍼지다가 사회 구조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만들어내진 않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미 액션을 취하고 있는 퐁퐁남도 있는 것 같고 말이다) 근데 그 퐁퐁남이라 불리는 집단에 대한 측은함과 더불어 조롱하는 이들에게서도 측은함이 느껴지는건 뭔가 알아내볼 필요가 있다는 인상이었는데, 어쩌면 그건 어떤 사회적 변혁을 일으킨다 해도 그것이 생리학적 변혁이 아닌 이상은 답이 정해져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안다고 해도 어쩌지 못한다는 부분이 측은해진다는 점이다.
'결혼'이라는게 사회적 제도로 정착한 것은 '연애결혼'이라는 개념이 사회에 자리잡은 것보다 상당히 역사가 길다. 하다못해 일반적으로 무조건 선진화라고 외치는 유럽문화의 토대였던 고대 그리스에서도 결혼이라는 제도는 사회 노동력의 생산을 위한 개념이었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밖에서 찾을 정도였으니까. 사실 그런 개념 구분의 형태에서 섹스라는 것은 집 밖에서 하는 섹스가 설레이는 것 이었겠고, 집에서 하는건 아무래도 '의무적 행위' 정도로 인지되지 않았을까? 시간이 흘러서 현대에 와서 연애결혼이라는 개념이 사회에 자리잡은 상황에서도 그 행위는 의무적인 무게감을 잃지는 않은 듯 하다. 뭐 일반적인 경우에 결혼 후에 아이를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는건 기본적인 전제로 깔고 들어가고 있기도 하니까. 결혼을 단지 '성욕 해소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덜떨어진 생각인지를 얘기하고 싶다는거다. 물론 필요조건이긴 하겠지, 근데 충분조건은 아니라는거다. 설거지론을 설파하면서 본인들은 퐁퐁남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며 퐁퐁남이라 불리는 집단을 조롱하는 분들이 결혼을 이 성욕 해소를 위한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접근한다는 인상이 강해서인지, 그게 측은하게 느껴졌다는 느낌이 든다.
'여성들이 결혼 전에 쾌락을 추구하는 삶을 살면서 이리저리 여왕벌 놀이를 즐기다가, 혼기가 다가오면서 점점 이전에 만나던 '미래보장형' 옵션이 없는 남자가 아닌, 그 반대 성향의 남자를 찾고, 본인은 폐차 직전의 모닝급 임에도 벤츠 C클래스 정도는 되는냥 값을 올려서 판다'라는 식으로도 비판을 하는데, 여기서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결혼 이전에 쾌락을 추구했었다는 점, 결혼 할 때가 되니 미래보장형 옵션이 달린 남자를 찾아 내숭을 부렸다는 점, 그런식으로 남성들을 구분해서 선별했었다는 점, 본인의 몸값을 마치 허위매물처럼 뻥튀기 했었다는 점 등등 많다. 근데 톡 까놓고 얘기하면, 본인 몸값을 허위매물처럼 뻥튀기 했어도, 팔면 팔린거고, 오히려 그건 영업을 잘한거겠지. 결혼 이전에 쾌락을 추구했었다는건 뭐 안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고, 남성들을 구분해서 선별한 부분은 뭐 남성들은 안 그런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근데 설거지론 설파하는 입장에 계신 분들은 왜 남성은 결혼 할 때가 되니 미래보장형 옵션이 달린 여자를 찾는다는 부분은 빼놓고, 단순히 외적인 부분에 집착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걸까? 실질적으로 남성도 미래보장형 옵션이 달린 여자는 찾기는 한다. 다만 그 미래보장형 옵션이라는 것의 개념이 좀 다를 수도 있다는거겠지.
사실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서리 칠 정도로 그것에 대한 안티 성향이 강한데, 비판하는걸 좋아하지, 비난하는걸 좋아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지금 퍼져나가는 설거지론이라는 것에서 페미니즘 혹은 여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부분을 강조한다면, 그건 약간 핀트가 엇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 입장에서, 나도 개인적으로 여성들을 구분해서 선별했었고, 많은 술자리에서 원나잇 각이 보인다고 (없는 얘기를 지어내진 않았지만) 허세를 부리기도 했었다. 쾌락 추구야 뭐 당연한 부분이었고. 많은 설거지론 산문들에서 공대남을 예로 들며, 남들 놀러다니는 동안 항상 공부만 하며 스펙을 쌓고, 그 스펙을 위해 쾌락이라는걸 나중으로 미뤘다는, 큰 비극을 위한 클리셰같은 백그라운드가 깔리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이가 그렇게 공부만 하시면서 살았는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본인도 사무직 연봉 탑 티어 직장에 다니지만, 학창시절에 그렇게 공부만 하지 않았고, 스펙 쌓으려고 하루 2-3시간 자면서 고생하고 지냈던 기억은 없다. (오히려 술 마시다가 수업 늦을까봐 2-3시간 자고 나간적은 있었었지) 내 동기 들도 그랬고, 내 선배도 후배도 모두 그랬다. 물론 나는 공대남은 아니었고, 중고등학교 모두 남녀 공학을 다녔긴 했는데, 사실 당신이 남중 남고를 나왔고, 공대를 나왔다고 해도,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큰 프레임 안에 갖힌 듯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는건 어불성설이다. 학창시절에 종합학원에 다녀도 만날 수 있는게 여자고, 봉사활동 하면서도 만날 수 있는게, 대학가서 토익학원 다니거나, 알바를 하면서도, 술집에서 술 한잔을 하다가도 만날 수 있는게, 하다못해 길 가다가도 쉽게 마주칠 수 있는게 여자였다는거다. '남중, 남고, 공대, 군대 테크를 타서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가 아니라 본인이 숫기가 없진 않았는지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는거다.
매력적인 이성과의 결혼을 위해 고연봉의 직장이 필요했고, 그러기에 스펙을 쌓기 위해 공부만 하며 쾌락이라는건 인생의 뒷자락으로 연기 시켰다는 이 큰 비극을 위한 백그라운드가 그럴싸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사실 누군가 정말 그렇게 살았다면,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결론으로 퐁퐁남이 된거라면, 그 스스로가 병신은 아닐까라는 자기 고뇌에 빠질 시간이 됐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다못해 청바지 하나 살 때도 매장에 가서 청바지를 이것저것 뒤져보고, 입어도 보고, 가격도 비교해보고 구매를 결정할텐데, 퐁퐁남이 고연봉의 직장과 쾌락을 미루고 미뤄서 얻은 스펙과 그에 대한 보상이라는 통장 잔고라는 것이 매매혼 형태의 결혼으로 한순간에 날아가버리면서, 평생 내 통장 잔고라는 것이 어떻게 생긴건지 까먹을 수 있을 정도로 경제권 양도하고 용돈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건 과감했던 투자의 실패이기도 하고, 제품 하나 제대로 안 뜯어보고 산 구매자의 실책이기도 하지. 근데 과연 얼마나 그렇게 살아왔냐는게 질문인거다.
근데 그건 부수적인 부분일 뿐이고, 가장 한심스럽게 들리는건, 그 대전제가 되는 '매력적인 이성과의 결혼'이라는게 당신들이 바라는 결혼이라는 것의 목적이라는거다. 매력적인 이성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포괄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정말 일반적인 관점에서 그게 관통하는 건 상대적으로 '이쁜 여자'라는 거다. 쉽게 말해 내 기준에서 외모 뜯어먹고 살 정도는 될 외모라는건데, 외모 뜯어먹고 살 정도 되는 외모의 여자가 내 침대 내 옆에 누워있다고 만족감 느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그게 결혼에서 당신이 바랬던 목적이라면 당신의 결혼관 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걸 얘기하고 싶은거다. (결국 외적인 매력이라는게 연결되는 것은 성욕해소의 수단이라는 결혼의 한가지 역할로 귀결되기에) 그리고 이 의심을 해봐야 할 집단은 퐁퐁남이라 불리는 집단 뿐 아니라, 설거지론 이라는 걸 설파하면서 퐁퐁남을 조롱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분들도 해당된다. 사실 당신들의 담론이라는게 이 대전제가 빠지면 이미 성립조차 어렵긴 하지. 현실은 위에 얘기했듯이 혼기가 찬 남성도 미래보장형 옵션이 달린 여자를 찾는다는건데, 그 미래보장형 옵션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닥 크지는 않다는 점이다. 물론 눈이 달린 이상 외모라는게 완전히 배제되는 옵션이 아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과거 된장녀의 사례도 그랬고, 지금의 한녀라는 개념이 지칭하는 대상도 그렇고, 지금의 설거지론의 퐁퐁녀도 그렇고, 결국 남성들이 만든 백그라운드에서 탄생을 했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은 듯 하다. 여성의 자주권이라는걸 외치는 페미나치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당신들은 아직까지 남성들이 만든 놀이터에서 놀고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남성들에게는 본인들이 만든 놀이터에서 피해를 보는 남성들이 생겨난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놀이터 자체가 잘못 설계된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할 단계가 되었다는걸 시사하겠지. 그걸 의심해봐야 하는거지, 그걸 조롱하면서 현타오게 해봐야 당사자에게 별 도움은 안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그걸 조롱하는 당신들도 왜 본인이 조롱이나 하고 있을까라는 부분에 대해서 근거를 찾아볼 필요는 있다는거다. 초식남, 절식남 말은 편하지, 근데 데이빗 보위 아우라에 홀려서 양성애자가 아님에도 본인은 양성애자라고 외치고 다녔던 그 시대 젊은이들처럼, 비혼이라 외치는 현 시대 젋은 세대의 아우성은 공허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 비혼이라는게 옵션이 달린 비혼이라는게 가장 큰 이유겠지.
사실 뭐 정론이라고 까지 불리면서 급속도로 퍼지는 이 설거지론 이라는 구조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피부에 와닿지 않았던 것은 개인적으로 그걸 인지할 필요성이 없었다는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게 다른 행성 얘기같이 느껴지는건 그게 바로 내 동네 바로 옆집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내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넌 뭔데 신경을 쓰냐?' 라는 질문이 생긴다면 그냥 지나가는 개꼰대 오지랖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근데 하나 의구심이 드는건, 이 설거지론에서 말하는 퐁퐁남이라는 것이 누군가가 마주하는 현실이거나, 누군가가 마주할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었다면, 해당 사례에서는 많은 부분이 변할지에 대한 부분이다. 아마도 변할거고, 그 변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또 다른 이유로 변질된 기생종이 되겠지. 결국 경쟁구도라는건 변하는게 없다. 설거지론이 얘기하는 큰 구조 자체도 그래서 변할리 없는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희망사항 이지만) 아마도 아마도 페미니즘이라는 깃발 들고 설쳐대는 이들도 나름 타격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제발.
설거지론은 또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이름으로, 또 시간이 흘러 다른 이름으로 게속 등장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구조이면서, 그 필연적인 구조에 대한 비판, 현타 등등이 이어질거다. 그래서 결론은 스스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시라는 얘기다. (매력적인 사람이지, 잘생긴 사람은 아니다) 조롱당하는 이, 조롱하는 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일테고, 그냥 쉽게 말하면 측은하게 살지들 말라는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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