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차 15km 주간행군 할만함.
5주차 30km 야간행군 ㅈ됨. 졸라 힘듦.
1주차 주말에 종교행사로 갔었던 교회 책상에 펜으로 적혀있었던 글귀였다.
사실 그럴만도 한게 주간행군은 단독군장으로 하는거고, 야간행군을 완전군장으로 하는거니.
느껴지는 물리적인 무게부터 다르긴 했다.
게다가 제일 걸리적 거리는건 아직 길이 덜 든 군화였다.
사실 군대 갈 나이 이전에 구두 신어볼 일이 거의 없었는데.
15km를 아직 길도 덜 든 군화를 신고 걸어야 한다는건 참 껄끄러운 일이었지.
게다가 뭐 신소재를 사용해서 가볍고 이런 것도 아니었다.
군화로 때리면 아플 정도로 무거웠으니.
주간행군 할 때부터 활동화를 신고 걸을 사람과 열외해야 할 사람들을 걸러낸다.
근데 이게 편하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건 아니다.
열외를 하려면 진짜 아파야 하는데, 아픈 정도가 몸이 좀 안 좋아서 못 하겠다라고 하면 노 땡큐라고 한다.
정말 뭐 과호흡이 와서 호흡이 곤란한 수준이 되더라도 심호흡 하고 걸으라고 할거다 아마.
그러니 열외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제 남은건 활동화 신고 걷는건데, 이건 그나마 이유가 좀 있으면서 흔하다.
평발.
내성발톱.
각 생활관 마다 1-2명 정도는, 많게는 2-3명 정도는 활동화를 신었다.
사실 나도 평발이다.
그래서 나도 우겨볼 수는 있었을 것 같다.
근데 얘기 조차 안 꺼냈다.
미련한 오기였던 것 같다.
뭐 이젠 알지.
미련한 오기 부려봐야 손해보는건 나라는걸.
주간 행군은 정말 산책 다녀오는 기분이었다.
포천 논밭 옆으로 처음 가볼법한 길들을 걸었다.
날도 맑았고, 공기도 좋았다.
반쯤 걸었을 때 시골 집 앞에 교복입은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여자학생이 보였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모두 4주 동안 여자사람이라는 존재를 보지 못했었다.
충청도 출신의 동반입대한 생활관 동기 A가 그 학생이 이쁘다고 했다.
B가 '너무 어리잖아.' 라고 했다.
그러니까 A는 '뭘 어려 저 나이면 내가 임신시킬 수도 있어' 라고 한다.
미친놈들.
암튼 그렇게 주간행군을 다녀왔다.
신교대 생활도 이제 어느정도 적응이 됐다.
이제 화장실도 간헐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다만 코는 계속 막혀있었다.
한번은 종교행사에서 가져온 초코파이 하나를 몰래 건빵주머니에 넣었다가 생활관으로 가져왔었다.
규정 상 생활관 내에 부식을 가져오면 안되는데, 뭐 그렇게 가져왔다.
먹고 싶으니까.
사실 코가 막혀있으니, 먹어도 맛이 안 났다.
그래서 나중에 코 좀 뚫리면 먹으려고 가져왔다.
근데 도저히 코가 막혀서 뚫릴 기미를 안 보였다.
그래서 그냥 화장실에 몰래 숨어서 먹었는데.
그 날 울 뻔 했었던걸로 기억한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이 안난다.
4주차에 각개전투라는 것도 한다.
각개 병사에게 전투부대의 일원으로 싸우고 생존하고 자신과 장비를 방호하며 전장에 적응하도록 각 개인의 전투력을 기초로 하는 전투기술이 각개전투인데.
사실 그런거 없고 그냥 굴린다.
포복 자세로 계속 굴린다.
왼쪽으로 돌고, 오른쪽으로 돌다가, 앞으로 기다가 방향 돌리고.
그렇게 50분 굴리다가 5분 쉬게 해준다.
5분이 끝나면 다시 50분 동안 구른다.
각개전투훈련장에 모래가 계속 날린다.
이러니 코가 뚫릴 수가 없지.
이 시점 즈음 되면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냥 별 생각없이 하라는대로 하면 마음은 편하구나.
굳이 하라는대로 하기 싫어서 생각을 하다보면 그때부터 마음이 불편하구나.
생각해보면 각개전투가 힘들진 않았다.
그냥 구르는게 짜증났을 뿐이지.
강형도 이제 생활관 애들이랑 친해졌다.
같이 조교 욕도 하고.
본인 썰도 풀어주고.
본인 친한 연예인들 얘기도 해주고.
현금으로 얼마줄테니 놀러오라는 재벌가 여자들 얘기도 해주고.
결혼할 뻔 했던 썰.
근데 결국 못했던 썰.
음악은 뭐 그냥.
좋아하는 밴드 누구냐고 했는데 Offspring 이라길래 더 안 물어봤다.
생활관에 강형이랑 동갑인 다른 형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형이랑 말이 더 통했던 것 같다.
같이 걸프전 얘기하다 고르바초프 얘기까지 의식의 흐름을 이어갔었던 아직도 기억난다.
안경 쓰고, 얼굴이 하얗고, 백내장이 있어서 군대를 못 오다가 결국 끌려왔다던 형이었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5주차가 되어서 드디어 완전군장을 싸고 야간행군을 준비했다.
완전군장을 싸면 총 25kg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25kg 처럼 느껴진다.
모포, 침낭, 반함, 예비 전투화, 예비 전투복, 야삽, 방독면, 소총, 속옷, 수건, 폴대, 지주핀, A형 텐트 반, 판초우의까지.
더 있었나?
신교대장이 야간행군을 시작하기 전에 동기부여를 한다고 운동장에 모이라고 한다.
남자로 태어나서 짊어질 무게에 비하면 완전군장 무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아 모르겠고 졸라 무거웠다.
시작부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태로 8시간을 걸었다.
50분 행군, 10분 휴식. 그리고 반복.
중간중간 활동화를 신고 가는 훈련병들을 보면 내가 왜 오기를 부렸나 싶었다.
나도 그냥 평발이라고 할 걸.
나도 그냥 평발이라고 하고 활동화 신을걸.
발바닥은 뜨거웠고, 뜨거웠던 부분은 물집이 잡히거나, 심지어 쓸려서 물집이 이미 터진 부분도 있었다.
사실 그 순간에는 눌러도 별로 안 아프다.
다 끝나고 샤워하는 순간부터 아프지.
8시간 동안 온갖 잡생각을 다했다.
8시간 동안 힘들기도 한데, 지루하기도 하다.
그리고 졸립기도 하고.
뭐 어쨌든 그렇게 멍 때리다 보니 8시간이 지나서 행군이 끝났다.
신교대장이 수고했다고 한다.
각자 생활관에 들어가서 군장을 풀고, 샤워를 한다.
물집 터진 발이 심각하게 따갑다.
그리고 그 물집 터졌던 자리는 아직까지도 굳은살이 벗겨지는 자리가 되었다.
군생활 내내 굳은살이었으니 뭐.
야간행군을 끝내고 나니 이제 자대배치를 받고, 신교대 생활이 끝나는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5주 동안 같은 생활관을 썼던 모두와 작별이구나.
강형은 8사단 수색대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신교대 조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는데, 자격 미달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8사단 16연대에 속한 일반 중대로 배치를 받았다.
신교대가 끝나기 직전에 306에서 같이 왔던 6포병 간다던 아저씨가 잠깐 나와보라고 했다.
아저씨 손에 담배가 한대 들려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라이터를 건네줬다.
우리는 한모금씩 담배연기를 머금었다 뱉었다.
어지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기분이 좋아져서 비행기 날아가듯 날뛰었다.
조교 하나가 뭐하는 거냐고 당장 담배를 끄라면서 달려왔다.
근데 오늘 가는 마당에 얼차려를 주진 않더라.
그리고 나는 연대장 신고를 위해 같은 연대로 향하는 다른 인원들과 군수송트럭 뒷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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