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차에 취사장 앞에서 줄을 서고 있는데 오랜 친구를 하나 우연찮게 발견했다.
아직 대열 맞추기 까지 시간이 좀 있어서 가서 아는 척을 했는데 처음에는 못 알아보다가 알아채더라.
뭐 밖에서 머리가 길었던 탓도 있겠지만, 밖에서는 렌즈를 꼈는데 훈련소에서 검은색 뿔테안경을 끼고 있었으니까.
반가웠는데, 반가운 만큼 얘기 나눌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친구는 운전병으로 수송대에 간다고 했다.
나는 일반 보병으로 일반 중대에 간다고 했고.
휴가나 나가서 연락하자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화생방 ㅈ같다고 했다.
화생방은 진짜 ㅈ같았다.
일단 가장 ㅈ같았던 점은 내가 받은 방독면이 우수자 용이 아닌 좌수자 용 이었다는거다.
한마디로 정화통이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에 달려있었다.
정화통이 오른쪽에 달려있으면 정화통을 뺄 때 오른손을 얼굴 바깥에서 얼굴 안쪽으로, 정화통을 착용할 때 얼굴 안쪽에서 얼굴 바깥쪽으로 돌리면 되는거였다.
정화통이 왼쪽에 달려있으면 그 반대인건데, 정신 없는 와중에 그게 손에 익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당시 시점으로 우수자로 22년을 살아왔는데 말이지.
화생방 훈련은 간단하다.
CS탄을 가득 터뜨린 밀실에 방독면을 쓰고 들어간다.
정화통을 뺐다 껴고, 결국 방독면을 벗으라고 한다.
터뜨려진 CS탄에서 나오는 연기를 마신다.
눈물이 나오고 콧물이 나온다.
군가를 시킨다.
침을 줄줄 흘리며 군가를 부른다.
목소리가 작다고 한다.
목소리를 더 크게 군가를 부른다.
그리고 나온다.
물로 씻는다.
한번에 1생활관씩 들어가고, 나머지는 밖에서 눈물 콧물 범벅이 돼서 나오는 괴로운 얼굴들을 구경한다.
내가 이미 한 상태라면 웃긴 장면이고, 내가 해야할 상태라면 두려울거다.
내가 속한 생활관의 순번은 꽤나 뒤였던걸로 기억한다.
306 보충대에서 만났던 핸섬한 아저씨가 침을 줄줄 흘리면서 뛰어내려왔다.
그 후에 한 3개 생활관 쯤이 더 하고 내가 속한 생활관이 들어갔다.
나는 정화통을 뺐다 껴는데 이미 숨을 참지 못할 것 같았다.
어차피 조교들이 방독면을 벗으라고 할텐데, 몇 초 더 먼저 CS탄 마시는건 참 ㅈ같았다.
눈물은 생각보다 별로 안 나왔다.
콧물도, 침도 그렇게 많이는 안 나왔다.
계속 트림이 나왔다.
쉬지않고 숨 쉴 때마다 트림이 나왔다.
괴로웠다.
이건 콜라 마시고 꺼억 하는 트림과는 달랐다.
난생 처음 불쾌한 트림이 나오고 있었다.
모든 과정을 끝내고 밀실 밖으로 나왔다.
뛰었다.
보통의 공기가 반가웠다.
트림도 멈췄다.
조교들이 수통에 담은 물을 얼굴에 뿌려줬다.
여기서 중요한게 얼굴을 문지르면 안된다.
CS탄 입자는 갈고리 모양으로 생겨서 얼굴을 문지르면 그 입자가 얼굴에 박혀서 몇시간 동안 괴롭다고 했다.
조교가 그걸 설명했던게 기억이 났다.
다만 얼굴을 문지르는데 그게 기억이 났다는게 문제였다.
얼굴이 진짜 졸라 아팠다.
몇시간 동안.
같은 주에 산에서 수류탄을 던졌다.
한 명에 하나씩.
조교들이 각종 사고 사례들을 알려줬다.
뭐 수류탄을 잘못던진게 튕겨나와서 몸으로 덮은 얘기라던가.
수류탄 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수류탄 하나에 산이 들썩거리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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