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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tion/Military Note

by Mr. Lazy 2021. 9. 2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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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1일 입대했다.

정확하게 기억난다. 

입대 날짜를 신청할 때 거짓말처럼 입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

아빠 차에 부모님과 남동생 그리고 그때 사귀던 여자친구가 탄 상태로 306 보충대로 향했다.

갈비를 먹었다. 

사실 아침을 먹는 타입이 아니어서, 이른 시간 부터 너무 배부른 식사는 거부감이 있었는데. 

입대하고 나서 아빠가 왜 굳이 갈비를 먹으라고 고집을 부리셨는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감사한거지 뭐.

그땐 몰랐지.

 

머리는 집 앞에 자주가던 미용실에서 깎았다.

흔히 말하는 '김병지 머리'를 한 아줌마가 운영하시는 조그만 미용실 이었는데. 

가까워서 갔다. 

입대하냐고 물어보셨다.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말없이 머리를 밀었다. 

전역하고 나서 매번 그 미용실을 가게될줄이야.

그땐 몰랐지.

 

그때 제일 자주 입었던 스키니 진을 입었다.

Dream Baby Dream 이라는 문구와 해골이 그려진 쥐색 후드 맨투맨도 입었다.

거기에 카키색 나이키 덩크를 신고 자주 입던 검은색 블루종을 입었다. 

반지, 체인 전부 빼고 갔다. 

후드를 쓰고 있었다. 

후드를 벗으라고 해서 후드를 벗었다. 

줄을 서라고 해서 줄을 섰고, 오와 열을 맞추라고 해서 손을 벌려 남들과 간격을 맞췄다.

입대식을 했다. 

군악대가 연주를 한다.

사람들이 많다. 

가족들, 애인들, 친구들, 그리고 입대하는 사람들.

연병장에 줄을 서기 전에 가족들과 여자친구가 있는 위치를 기억해두고 갔는데.

남들이 인사하느라 벌리는 손에 가려 전부 보이지 않았다.

시끄러웠다.

울 것 같았는데, 결국 울진 않았다. 

그리고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

모두 쭈그려 앉아서 대기를 했다. 

몇시간을 대기했을까.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군복을 받았다. 

군화도 받았다.

군모도 받았다.

입고 왔던 모든걸 벗고 내의 부터 모두 보급받은 옷으로 입었다.

생활관 유리에 비친 모습이 정말 찌질해보였다.

내 옆에 있던 아저씨 모습도 찌질해보였다.

우리 모두 찌질해졌다.

 

밖에서 입고 왔던 모든걸 박스에 넣고 포장한다.

부모님한테 보낼거라고 한다.

이걸 받은 부모님은 느낌이 어떨까.

보통 이런식으로 옷을 보내는건, 사망자 유품 보낼 때 이러는게 아닌가?

난 사망한건가?

부모님께 쓰는 편지도 안에 같이 넣었던 것 같다.

여자친구한테 쓰는 편지도 안에 같이 넣었다.

엄마한테 보내는 편지 내용에 여자친구한테 편지 보내달라는 부탁을 썼던 것 같다.

옆자리 아저씨가 램프 기능이 있는 펜을 가져왔다고 해서 밤에 소등하고 나서 빌려서 썼다. 

사실 부모님한테 별 내용을 안 쓴 것 같다.

여자친구한테도 별 내용을 안 쓴 것 같기는 한데, 정성스럽게는 쓴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이름은 기억 안나는데, 우리 생활관을 관리하던 이등병이 있었다.

이등병인데 키는 190cm가 넘는 듯 하고, 덩치가 컸다.

타이탄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뭐 맡은 보직 특성 상 그 친구가 우리한테 얼차려를 주곤 했는데. 

뭐.. 주는대로 고분고분 받기도 했다.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는데. 

그 타이탄 같은 친구도 키 160cm 정도 되보이는 조그만 병장 앞에서 재롱떠는걸 보니

아 너도 그냥 군생활 하는구나 싶었다. 

 

보충대 병사들은 항상 전투모가 아닌 방탄모를 쓰고 있었는데. 

머리끈을 빼고 방탄모를 눌러서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머리 위쪽을 덮었다.

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컨셉이다. 

마치 비니로 눈 거의 가리게 쓰는 우원재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자대배치 받고 나서 알았지.

그게 얼마나 불편한건지. 

걔네들은 식사시간에 밥 빨리 쳐먹으라고 식탁을 걷어차기도 했는데. 

이유는 그냥 밥을 빨리 안 먹는다는 이유였다.

이게 뭐 밥 먹는 시간을 실제로 잰다기 보다는

그냥 군기 잡으려고 돌아다니면서 랜덤하게 골라 차는거다. 

거기서 개겨봐야 너만 손해다. 

 

그렇게 보충대에서 몇일을 정신없이 끝내고 나면 이제 신교대로 간다.

몇일 지났는데 벌써 변비가 온다.

술 생각? 안 났던 것 같다.

여자 생각? 거의 안했던 것 같다.

담배는 계속 생각나더라.

삼삼오오 담배 몰래 숨겨뒀다가 피는 애들이 몇 있긴 했다.

지들끼리 망 봐주고 그러더라.

그래봐야 걸린다. 

밖에서 대놓고 피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화장실에서 피는 정도니까.

학교 선생들은 귀찮으니까 봐주는걸텐데.

여기는 그런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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