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of how people in building-forest village live was a bit unusual. If there was a problem, it was just the way how I accept general features as unusual matters. I don’t know if it was cause of the dignity from the frame, but I rather chose exoteric adaptation with internal untruth than theoretical resistance. It was the repeated falsehood to be apart from the truth, and I sing the truth with that untruth. I was a lazy songwriter, and behind of that laziness was filled with the faith of a person. However, just as that lazy shadow cannot cover the midair above building-forest, my faith was smashed to pieces of starts on the midday sky. Maybe that is why I missed the crescent moon on the midday sky.
빌딩 숲 마을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조금 독특했다. 다만, 그 일반적임을 독특함으로 받아들이는 내 방식이 문제라면 문제였을 것이다. 골격부터 넘치는 위용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원론적인 저항보다는 외적인 순응과 내적인 거짓을 택했다. 그것은 진실에서 멀어지기 위해 되뇌는 거짓이었고, 나는 그 거짓으로 진실을 노래했다. 나는 게으른 작곡가였고, 나의 게으름에는 한 인간의 신념이 담겨있었다. 다만, 저 게으른 그림자가 빌딩 숲 상공을 덮을 수 없듯이, 내 신념은 산산이 흩어져 한 낮의 별들이 되었을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그렇게도 한 낮의 초승달을 그리워 했었나 보다.
Start-point and end-point (시작점과 종료점) (0) | 2020.05.07 |
---|---|
Mr. Loman’s logbook or Phony (Mr. Loman의 항해일지 혹은 거짓) (0) | 2020.05.07 |
Insurgent (반란자) (0) | 2020.05.04 |
Beside the Container (컨테이너 옆에서) (0) | 2020.05.04 |
In that way, this painting exists (그렇게 이 그림은 존재했다) (0) | 2020.05.04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