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이라는 사이비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대한 기억이 있는 이들이라면 Y2K라고 불리던 밀레니엄 버그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흔히 공상과학 영화, 소설 따위에서 나오던 디스토피아가 실제로 우리 눈앞에서 구현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 사회 전반에 우려를 낳았던 이슈였는데, 당시에는 현재와 같이 다양한 매체가 없었기에 이 우려에 대한 신봉은 사이비 종교 수준으로 퍼졌던 재밌는 현상이었고, 실제로 그 공포심을 활용해 상업적인 이득을 본 이들도 있었다. 필자도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2000년으로 넘어가기 전 PC 시간을 더 과거의 시간으로 돌렸다가, 2000년이 지난 후 원래의 시간을 맞추었던 기억이 있기도 하다. 어쩌면 새로운 세기를 맞아 일어났던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기도 하지만,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어가기에는 조목조목 따져보기에 재밌는 구석들이 있는 사건이었다.
흔히 공상과학 영화, 소설 따위에서 많이 보여주는 기계와의 전쟁, 시스템에 구속된 인간, 같은 의상을 입은 인간들, 같은 행동을 취하는 인간들, 기계의 배신 등등. 물론 표현의 부분에 대한 밀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크게 봤을 때, 디스토피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예측들은 과거부터 우려지고 우려져 왔다. 특히 AI와 인간이 바둑 경기를 하는 현재 시점에서 AI의 자아 인식,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디스토피아에 대한 공상은 꽤나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 뭐 예를 들면, 자아 인식을 한 AI가 모순된 인간을 바로 잡기 위해 학살을 하고, 뭐 이런.. 진부한.. 뭔가.. 그런.. 암튼.. 개인적으로 이런 디스토피아는 인간에 대한 과신이 없으면 애초에 성립 불가한 부분이라고 본다. AI가 어떤 식으로 기능을 강화하고, 어떤 식으로 발전을 한다고 해도 애초에 그 프로그램의 구성 자체는 인간의 것들을 베이스로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AI가 모순된 인간을 바로잡기 위한다는 각성에 이르기까지 성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한 인간도 그 성찰에 이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AI가 어딘가에 도달한다는 것은 인간도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고, 역으로 인간이 도달하지 못하는 부분은 AI 또한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AI 또한 만들어진 개념들의 이항대립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또 다른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성찰의 과정에서 과부하로 터질 수 있다는 점이 인간과 다른 정도.. 일 수 있겠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과신이라는 사이비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 과신이라는 것은 워낙 강력한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역사의 흐름과 함께 많은 것이 변해왔음에도, 이것만은 변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과신이 사이비라는 사실을 덮기 위해 무한의 시뮬라크라를 펼쳐 저지전략을 펼치기도 한다. 어쩌면 시뮬라크라 그리고 저지전략은 현대철학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개념이라기 보다는 우리에 대한 우리의 분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상상하는 디스토피아’라는 것은 ‘디스토피아’와는 구분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디스토피아에 대한 사유는 나체가 된 디스토피아를 마주했을 때 비로서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