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리다의 해체주의에서의 해체는 조립의 반대로서의 해체가 아닌 차연(Differance)으로서의 해체이다.
2. 해체와 조립은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상보적인 관계다. 조립없이 해체가 존재할 수 없으며, 해체없이 조립이 존재할 수 없다.
3. 따라서 데리다의 해체주의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기존에 조립된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서구 철학에서 오랜시간 논의 되어왔던, 중심, 현존, 이성, 근원 등이다. 이는 곧 질서다.
4. 질서는 '차이'와 '구분'에 의해 가능하다. 그리고 서구 철학에서는 이 질서의 구축을 위해 이원화를 사용해왔다.
5. 사물과 언어, 존재와 표상, 중심과 주변 따위의 이런 이분법적 대립을 해체시키는 것이 해체주의의 출발이다.
6. 그리고 서구 철학을 지탱하고 있던 중심, 현존, 근원, 이성중심주의 등을 해체하고자 한 것이 데리다의 의도였다.
7. 하나의 건축물에 구조가 있고 그 중심이 있다면, 이 중심이라는 것은 건축물의 외관, 인테리어, 양식 등과는 구별된다. 중심은 전체를 총괄하고, 나머지는 일부분에 해당하는 요소일 뿐이다.
8. 따라서 중심은 이 건축물 안에 포함되어있다고 할 수 없다. 건축물의 외관, 인테리어, 양식이 중심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9. 이 중심은, 건축물 전체의 중심이지만, 전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일부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10. 정리하면, 중심은 건축물의 구조를 총괄한다는 측면에서 건축물 안에 있는 것이 되고, 그 일부 요소는 아니라는 점에서 건축물 밖에 있는 것이 된다.
11. 즉, 중심은 건축물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는 모순이 성립되는데, 이 모순은 중심이 구조 속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이 중심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12. 따라서, 어떤 텍스트가 하나의 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 되거나,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13. 모든 것에 구조가 있고, 그 가운데 중심이 있다는 믿음은 통일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욕망이다. 중심이 있는 구조의 확실성에 대한 믿음으로 인간의 불안은 정복될 수 있는 것이다.
14. 해체된 중심을 전제로 본다면, '기표'와 '기의'도 초월성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기표와 기의는 유동성을 가진다.
15. 유동성을 가진 기표와 기의를 가지고 우리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이유는 차연(Differance = Difference + Determent)이다.
16. 기표가 서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과, 기의가 다른 기의의 사슬 또는 시스템 내에서 차이의 체계적인 작용을 통해 지시할 수 있을 때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17. 여기서 기의는 다른 기의를 만날 때 존재할 수 있다. 다른 기의와 만날 때만이 그 차이가 드러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며, 하나의 기의는 스스로 지시할 수 없다.
18. Pipe라는 단어를 보고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있는 수 많은 기의들과 그 연쇄사슬로 Pipe가 되어 흔적을 우리 머리 속에 남기는 것이다.
19. 기표(A1)와 기의(A2)에 대한 해체를 기표(B1)와 기의(B2)를 통해 한다는 점에서 해체주의는 모순을 가지게된다. 여기서 이 기표(B1)와 기의(B2) 또한 다른 기표(C1)와 기의(C2)에 의한 해체가 가능할 것이다.
20. 해체를 통해 어떤 다음 선택지를 선택하는지는 각자의 믿음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 믿음은 일련의 질서를 따를 것이고, 이 질서는 이를 지탱하는 요소들로 구조를 이룰 것이다.
21. 이러한 해체와 조립의 과정을 통해 어떤 구조가 형성될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떤 새로운 방식의 질서가 또 다른 시대정신이 될지에 따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2. 다만 현재의 시점에서 보기에는 철학은 종교와 같다. 현대과학이 종교와 같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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