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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Cogitation/Long

by Mr. Lazy 2020. 4. 2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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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흔적들의 대리보충에 의해 어떤 현전에 도달이 가능한 것이라면, 우리가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고 얘기하는 개념은 현전하지 않는 '허상' 이라는 부분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


2. 가령, 영어로 1st(현전) 라는 정리가 성립하려면, 2nd(흔적)라는 것의 대리보충이 있다는 전제 하에 1st의 성립이 가능하다. 2nd가 없다는 전제 하에 결승점에 도달한 달리기 주자는 그냥 결승점에 도달한 달리기 주자일 뿐, 1st로 도달한 주자라는 의미가 부여되지는 않는다.


3. 당근즙을 권하는 행위에 대한 그리움(흔적)에 의해서 그녀(현전)에 대한 기억이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낸 2018년의 4월에 깨달은 것은, 그 현전의 대상이 바뀌어도 흔적에 대한 그리움이 바뀌지는 않는 다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가졌던 그리움은 흔적에 대한 그리움이고, 현전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었으며, 흔적의 대리보충 없이는 현전에 대한 흔적의 연결고리가 이어지지 않음을 깨달았다.


4. 그리움이 닿는 것이 현전이 아닌 흔적이었기 때문에, 현전의 대상이 바뀌었다 한들, 전혀 영향 받을 것은 사실상 없다. 현전에의 닿는 그리움이라는 것은 허상으로 만들어낸 연결고리이며, 어쩌면, 그저 그렇게, 그런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익숙해진 내부적 매너리즘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5. '고도'는 극에 현전하지 않지만,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현전과 고도가 올 것이라는 그들의 증언에 의해 대리보충되어 극에 등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도'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대리보충에 의해 고도가 극에 등장한다는, 즉, 고도의 극 중 출현에 고도의 현전은 실질적으로 영향이 없음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극에서의 이런 면만 본다면, 오히려 고도의 부재와 고도의 존재의 이항대립이 아닌, 그 이항에 속하지 않는 영역에서 고도가 현전한다는 것이다.


6. 상기 언급된 구조로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면, 타인에 대한 사랑은 물리적 현전이 없는 개념적인 대상이기 때문에 흔적들의 대리보충에 의해 설명이 가능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현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그 실체와의 마주침이 아닌, 그 실체를 대리보충하는 흔적들이라는 물리적 실재와의 마주침에 의해 신빙성을 가지게 된다.


7. 여기서 의심이 생기는 부분은, 우리가 타인에 대한 사랑을 대리보충하는 흔적들이라 부르는 물리적 실재들이 과연 진정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을 대리보충하는 흔적들인지에 대한 타당성 여부이다. 위 4번에서 설명했듯이, 어쩌면, 그저 그렇게, 그런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익숙해진 내부적 매너리즘의 영향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의심의 근원인 것 같다.


8.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7번에서의 의심이 불필요한 의심이라면,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 있음'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 없음' 이라는 이항에 속하지 않는 영역에서 현전할 것이다.


9. 하지만 7번에서의 의심이 필요한 의심이라면, 그 의심이라는 것은 어떤 흔적들에게 대리보충 되어 존재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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