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에 대한 기억을 회상해보면 빠질 수 없는 질문이 '거기서 누가 나를 가장 많이 갈궜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 것 같은데, 스스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항상 정ㅎㄹ 한명으로 귀결된다는건 그게 현실이었고,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결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하다.
정ㅎㄹ은 나보다 1살 많은 형이었고, 내가 자대배치 받을 당시 3소대에 소속된 상병이었는데, 나도 자대배치를 받으며 3소대로 배치되었었기에, 내가 교육/작전/화생방 계원으로 빠지기 전까지 내가 소속된 분대의 상병 선임이자, 차기 분대장인 형이었다.
소대에서 별명은 '양아치'였는데, 특별히 이 형이 양아치여서 그랬던건 아니고, 양아치 같이 생겼다는게 그 이유였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인상은 양아치 보다는 화려한 셔츠를 입은 시골 건달에 가까웠는데, 뭐 실제로는 인천에 살았던걸로 기억하고, 그 당시 유행했던 바다이야기에서 알바를 했었다고 했다.
키는 그렇게 크진 않았었는데, 170cm 정도 였던걸로 기억하고, 부대 있는 동안 꾸준하게 운동을 해서 몸에 근육이 좀 붙어있긴 했는데, 과거에 살집이 좀 있었던 탓인지 군데군데 튼살 이라던가, 탄력없는 살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보이긴 했었던 것 같다.
군생활을 하다보면 보통 상병 2개월 부터 본래 인성이 들어나기 시작해서 그게 병장 1 - 2개월까지 이어지고, 그 후로는 그야말로 말년 테크를 타면서 사람이 나태해지는데, 내가 자대 배치를 받았을 당시 양아치는 막 상병을 달았었던걸로 기억하니, 말 그대로 난 계원으로 옮기기 전까지 그 인성을 모조리 받아들여야 했던거지.
근데 당시만해도 8사단은 푸른병영이 정착해있었어서 구타라는건 꿈도 못 꾸는거였고, 훈련이 많다는 예비사단 특성 상 훈련기간 외에는 내무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관례도 있었어서, 사실 내가 받았던 갈굼이 뭐 DP 보다가 PTSD 올 정도로 강력했던건 아니었다.
다만 그 순간에 직접 겪는 그 시점에서는 그게 좀 압박으로 느껴질 정도라고 해야하나.
양아치는 입대 때부터 기다려준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서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의 기다림이라는게 양자 힘든건 마찬가지겠고, 그걸 서로 기다린다는건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일이겠지만, 매일 수화기를 붙잡고 좌절하는 듯한, 답답한 듯한 모습을 보이며 담배를 태우고 있는 양아치의 모습을 보면 그게 꼭 아름다운 일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특별하게 기억나는건, 양아치 여자친구가 대학 친구들하고 MT를 간다고 하는데, 그걸 꼭 가야하냐며 몇시간 동안 수화기를 붙잡고 논쟁을 벌였던 모습이었는데, 사실 뭐 서로 믿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닐뿐더러, 서로 간의 의리, 배신감, 로열티 같은걸 논하기엔 양아치나, 양아치 여자친구를 비롯해서 전부 어렸지.
결국 그 여자친구가 MT를 갔었는지는 기억나기 않는데, 다만 인상에 남았던건, 군인은 할 수 있는게 없는 입장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었다.
물론 사례들이야 넘치고, 그것 관련 영화나 드라마들도 넘치고, 술자리에서 안주거리 삼아 소비되는 것도 넘치지만, 탈영이라는건 생각보다 쉽게 결심할 수 있는 행위도 아닐뿐더러, 군생활에서 근처 일어난 일로 보기에도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22시가 되면 철문에 좌물쇠가 잠기는 군대라는 곳에서 군인의 선택권이란 얼마 없다.
양아치도 그러지 않았을까?
답답한데, 어쨌든 MT 가라고, 재밌게 놀다 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암튼 나에게는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양아치가 분대장을 달 무렵 나는 계원이 되어서 소대를 옮겼고, 이제 양아치랑은 그냥 다른 소대 선임 정도 사이로 되었었는데, 바쁘게 지내다보니 어느새 전역모를 맞추고 사회로 나갔다.
싸이월드 일촌신청이 왔길래, 미니홈피 가서 봤더니 새로 뽑았는지 K5 신형 옆에서 흰티에 청바지 입고 사진을 찍었던데, 왜 그런 말이 있지, 잘생겼으면 흰티에 청바지만 입어도 멋있다고.
그냥 K5 옆에서 사진찍은 시골 건달 같더라.
허당구 (0) | 2022.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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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독 (0) | 2021.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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