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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ㄷ

Cogitation/Military Note

by Mr. Lazy 2021. 11. 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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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보존의 법칙이라는게 있지. 

어딜가나 병신은 있다는건데, 이게 어떤 초일류 엘리트 집단에 가면 상대적인 병신이다해도 다른데서는 평타이상이겠지만, 군대 같이 팔도사나이가 랜덤하게 모이는 장소라는 특성 상, 이곳에서 병신이면 찐병신일 가능성이 높다. 

허ㄷ는 내 아버지 군번, 그러니까 나보다 딱 1년 위인 선임이었고, 내가 자대 배치는 받았을 때 상병이었던, 나이는 나보다 1살 많았던 형이었다. 

특징이라면 키가 엄청 작았고, (한 160 정도 되려나) 키와 비례해서 팔다리가 짧은 것에 비해 머리가 컸고, 고개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였는데, 사실 아직까지 그게 일부러 고개를 그렇게 기울이는건지, 뼈 구조 자체가 그런거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냥 누가 봐도 맹하게 생겼다.

경상도 출신이어서 사투리를 진하게 썼는데, 아마 부산 출신이었다고 들었던 것 같고, 아마도 저런 외모적 특징이라던가, 그에 어울릴법한 수동적이고, 내성적이면서, 방어적인 성격 탓에 본인이 소속되었던 소대 내에서 폐급 취급을 당하면서, 덤으로 선임들한테는 먹잇감이었고, 후임들한테는 무시해도 되는 상대 정도로 인식이 되는.. 사실 중대에 있는 전원에게서 그런 취급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나마도 그런 허ㄷ를 그런 인격적인 무시 없이 대해주던게 허ㄷ의 맞선임 군번이자 내 사수였던 ㅅㅈ형 이었는데, 사실 나는 그 전부터 허ㄷ를 그냥 유령취급했으면 했지, 따로 무시하거나 그랬던 적은 없어서 가끔 ㅅㅈ형, 허ㄷ, 나 이렇게 셋이 PX를 가거나, 수다를 떨어도 위화감이라는건 없었다.

사실 ㅅㅈ형이 잘 챙겨줬다기 보다는 애들처럼 유치하게 장난걸고 놀리고 이런거였는데, 허ㄷ가 마주했던 중대 내에서의 소외감이라는건 그런 놀림이나 장난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차갑고 냉정한 무언가였다. 

당연히 저런 피지컬로 훈련을 제대로 뛸리가 없었고, 그나마도 행군을 완주한 날은 거의 반 시체가 된 얼굴로 중대로 돌아오곤 했었는데, 사실 저 정도로 중대에서 소외되는 인물 정도면 행보관이 관심병사로 분류해서 행보관의 직접 관리 대상이 되지만, 허ㄷ의 경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관계로 행보관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가 되었고, 덤으로 포상휴가를 나갈 수도 없는 운명이 됐었다. 

그 사연은, 병신보존의 법칙에 맞게, 허ㄷ가 자대배치를 받았을 당시 허ㄷ 아버지 군번 정도에 그와 비슷한 병신이 하나 있었는데, 그 선임도 경상도 출신이었다고 했고, 역시나 작은 키에, 맹한 외모에, 특이한건 이 분은 고개가 오른쪽으로 15정도 기울어졌다고 했다. 

하루는 그 선임이 말년 휴가 전에 허ㄷ를 불러서 얘기를 나눴는데, 내용이 '너도 그냥 병신인 척 해라. 그럼 그냥 너를 병신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너한테 뭐라고 안할거다. 무시 당해도 된다. 어차피 병신이면 하다못해 작업 하나 시키는 것도 꺼릴거다. 그렇게 병신 취급 받으면서 조용히, 편안하게 군생활 하면 된다.' 이었다고 한다.

뭐 사실 나름의 생존전략에 대한 노하우 공개였으니, 비겁할 것도, 측은할 것도 없이 오히려 '너도 계획이 있구나' 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현실적인 얘기였는데,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면 그 얘기를 나누는 그 현장 그들의 뒤에서 행보관이 그 내용을 엿듣고 있었다는거였다. 

그 날로 그 선임이라는 병신은 말년휴가가 짤린 상태로 전역날 까지 병장으로서 나라를 지켰고, 허ㄷ는 해당 소대에서 이 선임 저 선임 조리돌림 갈굼을 당한 후 옆 소대로 넘어가 이 선임 저 선임 조리돌림 갈굼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인센티브로 포상휴가를 쓸 자격이 없는 놈 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은거지. (포상휴가는 행보관 재가 없이는 쓸 수 없는 휴가니까)

어찌보면 허ㄷ는 그냥 선임이 불러서 얘기하는걸 들은 정도니 처신이 너무 가혹한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행보관은 나름의 아량으로 정기휴가나 외박, 외출 등은 쓸 수 있게 해줬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군인으로서의 권리는 행사하게 해줬던거지. (포상 휴가는 회사로 치면 상여같은거고, 적자 나는 회사에서 상여를 줄리 만무하니까, 이건 직원으로서 회사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닌 것 같은 원리랄까)

암튼 그 병신 허ㄷ는 ㅅㅈ형 전역하고 나서부터 거의 말을 나눠봤던 적이 없었는데, 뭐랄까, 내가 바빠서 이기도 했고, ㅅㅈ형이라는 접점이 없으니 서로 할 얘기가 없었기도 했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에서 서로 얘기조차 안 나누다가 어느새 말년 병장이 되고, 말년 휴가를 나가더라. 

그리고 병신보존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허도가 말년 병장이 될 즈음에 또 다른 병신이 중대에 들어왔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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