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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2019) 리뷰

Cogitation/Film Review

by Mr. Lazy 2020. 5. 2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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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Reservoir Dogs’부터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아온 타란티노의 영화들 중 이번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만큼 명확하게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해준 영화가 있었을까? 만약 당신이 시간이 너무 없어 161분의 시간이 부담스럽기만 하다면,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릭의 담배 광고 씬만 봐도 타란티노의 메시지는 확실히 전달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짧은 1-2분 정도의 장면이 척추의 역할을 한다면, 나머지 159-160분 정도의 장면들은 척추에 붙을 기관과 그를 이루는 세포들을 붙이는 시간들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잘 완성된 형상을 미적으로 잘 구성된 하나의 사자상에 비유한다면, 맨슨 패밀리에 의해 살해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샤론 테이트의 일화를 모른 상태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왼쪽 넓적다리 하나 모자이크 처리된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로 해당 일화는 영화의 메시지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다만 그 일화가 인용되었다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내의 샤론 테이트가 등장하는 장면의 비중이 꽤나 있긴 하지만, 해당 일화와는 관련이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극 중 릭은 쉽게 말해 한물 간 액션배우, 클리프는 그의 스턴트맨 겸 매니저 역할로 등장한다. 이미 첫 30분 정도만 봐도 짐작 가능하지만, 릭은 상당히 철부지 같은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마치 그의 보호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클리프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음주운전으로 면허를 상실해서 매 일정 클리프가 대신 운전을 해준다던가, 안테나 고장난 것 수리를 부탁한다던가.. 릭은 시종일관 불안해 보인다. 새롭게 촬영하는 영화에서 계속 대사를 까먹어 대기실에서 괴성을 지르는가 하면, 아역 배우에게서 위로를 받기도 하는 등.. 클리프는 그 불안함이 없이 어딘가 초연해보인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동양 무술의 정점을 보여줬던 브루스 리와의 결투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수행하며, 의리로 인해 히피들의 소굴에 들어가 위험을 마다하고 오래된 친구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다만 할리우드 답게, 릭은 언덕 위의 고급 주택에서 살고 있으며, 그의 일정이 모두 끝난 후 그를 집으로 모셔다 준 클리프는 그가 거주하는 컨테이너로 향한다. 

당시의 시대상에 맞추어 영화 속에서 ‘히피’의 등장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 등장의 더 주요한 의의는 할리우드 배우와 히피의 그룹화를 통한 조롱에 있는 것이라고 본다. 사실 상 할리우드에서 부가적인 하나의 노동자에 불과한 클리프가 더 강직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되는 것도 이 부분인데, 할리우드 배우 혹은 히피 모두 ‘이미지 산업’에 불과하는 점이다. 클리프가 이소룡과의 결투를 하는 장면에서(물론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를 차에 집어 던지는 장면이 있는데, 간접적으로라도 이 결투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지.. 아니면 적어도 할리우드 무술의 상징이었던 이 동양 무술가가 어떤 식으로 고전을 했을 지에 대한 짐작을 하게 된다. 브루스 리가 사후에도 극히 인정을 받는 무술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나, 인정을 받는 무술가라는 사실과 실제로 결투에서 승리를 거듭하는 격투가라는 것은 두 개의 이미지 일 것이다. 브루스 리와 클리프의 결투를 통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 구분된 이미지들을 동일시 시키는 것이 이미지 산업, 즉 할리우드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이미지 상의 동일화를 통해 더 큰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것, 실제로 존경받는 무술가였으나, 격투가로서의 자질은 모르겠는 한 배우를 영화들을 통해 동양 무술의 정점, 절대 패하지 않는 절권도의 상징으로 만드는 것.. 

극 중 히피의 등장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시대적으로 히피의 등장은 전쟁에 지친 젊은이들이 사랑과 평화를 주장하며, 온갖 환각 물질에 절어 공동체 생활을 했던 당시의 문화였다. 이들의 이미지는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의 귀의를 하려하는, 마치 과거 방랑하는 유목민과도 같은 자유로운 형태로,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조화롭게 지낼 것 같은 ‘이미지’를 구축한다. 실제로 당시에 참전하지도 않았던 젊은 세대들이 그 참상을 전해 듣고 혹 할만한 요소를 갖춘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과 평화의 이름 아래 우드스톡의 펜스를 무너뜨렸고, 온갖 약물에 절어 집단 난교를 하기도 했으며, 로만과 샤론 일화와 같이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서는 서부극의 영웅 혹은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철부지일 뿐인 릭.. 사랑과 평화를 외치며 공권력에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시대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유목민 같지만 실제로는 약에 절어 어딘 가에 얹혀 살면서 내재된 폭력성의 본능을 할리우드에 연결시켜 살인을 정당화하는 주장까지 내뱉는 히피들.. 마지막으로, 아주 맛있게 연기를 머금고 담배를 광고하지만, 카메라가 꺼진 후 침을 뱉으며 본인이 광고하는 담배를 쓰레기라고 하는 릭.. 

유럽의 다다이즘에서 했던 시도는 비예술의 예술화를 통한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해체하는 작업이었다. 뒤샹이 가명으로 전시회에 사인된 변기를 가져다놓고 레디메이드 라는 개념을 작품에 활용한 것은 비예술과 예술의 경계 해체를 넘어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해체를 그 특유의 농담으로 풀어낸 작업이었다.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는 이미 영화광으로 유명한 타란티노 감독이 할리우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에 애정을 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에 추가로, 쓸데없이 상징화된 그 이미지 산업의 해체를 시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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