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영화를 보고서 '인간 내면의 숨은 파괴 본능', '남근주의로 떡칠갑한 억압적 장치들 속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심리적 사정행위를 목표로 삼는다' 정도를 평론이라고 남기는걸 보면 '네. 겉만 핥으셨으니 그게 남근인줄 아셨을 수도 있겠네요' 라는 대답을 해주고 싶다. 사실 평론이란게 지독하게도 숨겨놓은 원작자의 설계라는걸 파헤치는 기능도 하겠다만은, 그 외에도 많은 기능들을 해왔던게 사실인데. 오히려 그 외의 기능들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잭슨 폴록 액션 페인팅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블루북을 발견해낸다는건 잭슨 폴록이 의도한걸까, 아니면 평론이 제기능을 수행한걸까? 아니 질문을 바꿔보자, 잭슨 폴록은 비트겐슈타인의 블루북 한 구절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물감을 뿌려댔던걸까, 아니면 그냥 물감을 꼴리는대로 사정했던걸까?
브래드 피트의 잘생김, 타일러 더든이라는 캐릭터의 매력, 파이트 클럽 이라는 집단, 주인공과 말라 앞에서 무너지는 건물들, 괴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 영사기 중간 편집되어 잠시 등장하는 포르노그래피. 사실 그냥 정신 놓고 봐도 2시간이 좀 넘는 플레이 타임 동안 볼 것들이 넘치는 영화이긴 하다. 그러니 컬트의 판테온이라고 까지 부르겠지. 게다가 아직 '반전'이란 것이 클리셰가 되기 이전 등장한 반전까지. 그렇게 정신을 놓고 이빨 사이에 낀 팝콘 찌꺼기를 콜라로 헹구며 이 영화를 정신놓고 봤다면 당신도 이케아 카탈로그를 보며 가구나 수집하는 인간이 되버렸다는 것일테니. 참 모순적이지.
결국 클럽 멤버를 넘어서 군대화된 조직으로 테러리스트 집단처럼 되어버린 파이트 클럽은 '소비주의'라는 것에 관성이 생겨버린 사회를 초기화 시키려고 한다. 근데 왜 신용카드 회사 본사를 테러했을까? 이 질문은 '그럼 당신은 이마트에서 생필품 사고 현금으로 내나요?'라는 역질문으로 쉽게 해답이 나온다. 신용사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그 역사가 참 길다. 그리고 신용도라는건 오랜 기간 동안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존재해왔던거지. 그리고 그 장벽이 굳건했을지언정, 그 장벽을 쉽사리 열어줬던 역사는 아직까지 없었던 것 같다. (그 장벽을 아예 허물어 버린 듯 보이는 혁명은 있었겠지만, 그게 결국 장벽 허문게 아니라는건 역사가 증명을 해줬고 말이지) 사실 지금 시점에 와서 저런 군대화된 조직으로 신용카드 회사 본사를 테러해도 신용도라는 정보는 이미 클라우드에 올라간 상태라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저때라 가능한 발상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신용 장벽이라는게 어느정도 레벨로 구축이 된건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그럼 이 영화는 그 소비주의와 신용사회에 대한 비판일까? 이 부분은 파이트 클럽이 주인공의 정신 분열에 의해 탄생된 집단이라는 점과 'His name was Robert Paulson' 이라는 대사에서 철저하게 아니라고 답해준다. 그러니까 이름도 안 나오는 주인공도 맨정신에 저걸 하지는 않았다는거지. 게다가 맨정신에 오히려 그 계획들을 무산시키려고 속옷에 코트입고 다리 근육이 경련이 일어날 때 까지 뛰잖아. 그리고 정작 본인이 알던 지인이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는 그를 연민하며 그의 이름을 소비한다. 그리고 오히려 그의 이름에 대한 소비가 파이트 클럽의 밈이 되버린다. His name was Robert Paulson. His name was Robert Paulson.
게다가 파이트 클럽이라는 집단도 그 안에서의 활동을 위해 필요한 규칙들이란걸 베이스로 깔아둔다.
제 1조: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You do not talk about the Fight Club.)
제 2조: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You do not talk about the "Fight Club".)
제 3조: 누군가 "그만" 이라고 외치거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땅을 치면 그만둔다.
(If someone says "STOP" or Goes Limp, taps out the fight is over)
제 4조: 싸움은 1대 1로만 한다.
(Only two guys to a fight.)
제 5조: 한 번에 한 판만 벌인다.
(One fight at a time.)
제 6조: 상의와 신발은 벗는다.
(No shirts, No shoes.)
제 7조: 싸울 수 있을 때까지 싸운다.
(Fight will go on as long as they have to.)
제 8조: 여기 처음 온 사람은 반드시 싸운다.
(If this is your first night at a Fight Club, "You Have To Fight".)
쉽게 말해 그들만의 신용도이자,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라는거다. 탈구조를 외쳐봐야, 새로운 구조를 외칠 뿐이라는걸 말해주는거다. 이케아를 소비하던 남자가 파이트 클럽을 소비할 뿐, '소비주의'라는 큰 틀에서 벗어난건 없다는거다. 신용사회를 붕괴시키려던 남자가, 파이트 클럽 유지를 위해 다른 형식의 신용구조를 구축했을 뿐, 큰 틀에서 벗어난건 없다는거다. 정작 본인 지시로 신용카드 본사들 폭발시키는 장면을 로얄석에서 말라 손을 잡고 감상하며 주인공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ㅈ 됐네' 정도가 아니었을까?
쓰레기 통 안의 각종 소비재들은 당신들에 대한 표현이었을까?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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