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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쇼트 (The Big Short, 2015) 리뷰

Cogitation/Film Review

by Mr. Lazy 2020. 7. 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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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학과였음에도 대학시절부터 숫자와 관련된 것들과 그닥 친하지 않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회계 혹은 파생상품, 재무 관련된 것이었다. 막연하게 머리 아픈 것들이라 생각하고 접근하니 실제로 책을 읽어보고, 시험을 준비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러다 문득 깨달은 것이 이것은 개념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닌, 단어를 싹 바꿔버리니 개념정리가 안되는 어려움이라는 거였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방정식에 사용하는 미지수가 X인데, 이것을 K나 W나 P같은 알파벳으로 바꿔버리면, 방정식 상에 변하는 것은 없으나, 그 미지수 변화로 인해 방정식 자체를 갑자기 알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금융시장이란 것이 그런 면모가 있다. 금융시장 종사자가 아닌 이상은 사용되는 용어들에 대해, 그 정확한 개념에 대해 아는 것이 흔치 않다는 것. 사실 빅쇼트에서 ‘쇼트’가 공매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몇명이나 딱 보고 알아챌 수 있었을까? 그래서인지 빅쇼트는 영화의 몇부분을 할애하여 친절하게 적절한 비유를 통해 사용되는 단어들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특히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에 대한 설명과 CDS(Credit Default Swap)에 대한 설명은 참 쉬우면서 개념에 대한 설명이 적절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대학의 강의도 이와 같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지기도 했고.

 영화는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로, 머지 않은 과거에 실제로 벌어졌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그 사태에서 오히려 돈을 벌었던 인물들을 보여준다. ‘남들이 집을 잃고 길거리에 버려지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천문학적 단위의 돈을 벌다니 참..’ 이라고 하기에는 애초에 그런 제로섬게임 원리가 금융시장의 기초이고, 그런 원리에 의해 헷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도 하니,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그들의 그 분석력과 그 결과값에 대한 냉소적인 해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의 시작에서 나오는 마크 트웨인의 ‘곤경에 빠지는 것은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라는 문장이 시사하는 바가 큰데, 결국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는 것은 뭔가 확실한 값을 도출할 수가 없는 것이고, 과거의 사례, 현재의 상황 등이라는 변수들을 종합하여 예측한다면, 예측하는 이의 해석에 따라서도 달라지기도 한다. 아무튼, 어떤 정밀한 방식으로 예측했다고 해도 그것조차 확률이기에 극 중 등장하는 마이클 버리, 마크 바움 등이 말 그대로 ‘빅쇼트’에 베팅을 했던 이 거대한 규모의 도박은 극 중에 나온 것처럼 그리 쉽게 번 돈은 아니었을거라는 거다. (마치 다음주 로또 번호가 뭔지 정확하게 알고 산 개념은 아니라는거다.) 그들도 100% 확신에 의해 베팅을 했던 도박은 아니었을테니까.

 이런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여러가지로 들 수 있겠지만, 민간인 심층접근에 대한 진입장벽(위에서 설명한 단어 차이)과 실물경제와 전산경제의 괴리, 그리고 금융시장이 그들만의 리그로 형성되었다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에서 이런 발생원인에 대해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도록 발로 뛰어다니며 스토리를 이끌었던 것이 마크 바움과 그 팀의 역할인데, 실제 부동산 시장조사를 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권유하는 실적 좋은 세일즈맨들이 금융시장 지식이 전무했다는 점(한국으로 치면 폰팔이 같은 놈들이 팔고 있었으니..), 전산 상에서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부실채권들이 높은 신용등급으로 포장되어 제공되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로 변하는 시점에서 채무불이행을 할 것이라 예측한 채무자들이 집을 버리고 도주해버린 것 등을 발견한다. 폭탄돌리기의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 무디스, S&P가 등장하는데, 부실채권을 높은 등급으로 포장한 것을 고등급으로 승인을 준 것이 이 무디스, S&P와 같은 신용평가 기관이다. 그리고 무디스, S&P의 고객은 증권회사들이었다. 쉽게 말해, 증권회사들이 무디스, S&P에게 신용평가를 의뢰하고, 돈을 지불하고, 무디스와 S&P는 이들에게 돈을 받고 일을 한다. 다만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기에, 기존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증권회사의 비위에 맞춰 평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부실채권이 고등급의 신용평가를 받는 원인이 바로 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구조에서 발생한 것이다.

 결국 이 빅쇼트에 베팅을 한 이들에게 잭팟이 터진다. 채무불이행이 시작되고, 잘 포장되었던 부실채권들의 포장지가 뜯어지며 실체가 드러나고, 사람들은 집을 잃는다.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영화에서 블랙잭 게임을 들어 설명했던 합성 CDO도 있다. 즉, 이 베팅에는 단순히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과 증권회사만의 CDO가 있는 것이 아닌, 그 CDO와 관련되어 사슬구조를 이루는 합성 CDO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 사슬구조 전체가 돈을 잃는다는 얘기다. 빅쇼트에 베팅을 한 이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사슬구조 형식으로 이해관계자들의 규모가 커지면 발생하는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책임의 분산에 있다. 쉬운 예를 들어 온라인 구매를 했는데, A라는 제조사, B라는 유통업자, C라는 배송업자가 있다면, 배송 받은 제품에 하자가 있을 시 A, B, C 모두 책임을 회피하려는 그런 모양새랄까.

 영화에 등장하는 CDO와 합성 CDO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불과 몇 년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였다. 비트코인이 중앙통제 방식의 현재 금융 시스템을 대체하는 것으로 분산된 원장들을 사슬구조로 엮는 블록체인 기술과 함께 각광을 받았지만, 비트코인이라는 화폐시장은 결국 투기장 정도의 역할 밖에 수행하지 못했고, 분산원장 상의 결함 발생 시 전체가 결함을 가질 수 있는, 그리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해지는 한계를 가졌다. 그리고 만약 이 한계를 극복했다 한들, 그것이 중앙통제 방식의 현재 금융 시스템을 대체했을까? 개인적으로는 중앙통제처를 바꾸는 정도 수준이었겠지. 다만 그 중앙통제처가 책임을 가지지도 않은 상태로. 어떠한 구조가 있다면 구조의 리딩의 변화에 따른 성질은 변할 수 있겠지만, 그 구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은 변하지 않는다. 탈구조라고 해서 구조의 존재가 부정되지는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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