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들었던 황당한 멘트들 중에 몇몇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가 가는 것이 있는 반면, 아직까지 이해가 불가하면서, 앞으로 더 살아봐야 이해가 갈 것 같지도 않은, 말 그대로 그냥 '개소리'였던 것들이 있다.
내 기억에 존재하는 그런 평생가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황당한 멘트 중 가장 협박스럽게, 위협적인 분위기에서 들었던 멘트는 동대문 apm 상가에서 들었던 어떤 얼굴도 기억 안나고, 당연히 이름도 모르겠고, 심지어 몇층 몇호였는지 기억도 안나는 상가에서 일하던 형에게서 들었던 '기적의 천원 논리'였다.
내가 살던 일산에서는 중학교 시절에 일명 '버버리 붐' 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패션이 유행했었는데, 말 그대로 버버리 피케셔츠(카라에 꼭 버버리 체크가 들어가야하는)에 리바이스 Type 1 혹은 Engineered Jean을 입고, 나머지 악세사리였던 가방, 시계 등도 버버리로 맞추고, 신발은 꼭 나이키 포스, 아디다스 슈퍼스타 등을 신는 것이었는데, 버버리 보다 조금 급이 떨어지지만, 빈폴이나 폴로 등의 브랜드로 버버리를 대체해서 많이들 입기도 했었다.
그런 패션이 중학교 2학년 정도부터 3학년을 거쳐 고등학교 1학년 여름까지 유행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에 우리는 버버리 뽕에 만취해서 겨울이면 버버리 체크가 들어간 봄버를 살 것이라는 기약없는 약속을 하기도 하고, 그 버버리 봄버를 입으면 바바리맨 같이 하의 실종에 쪼리를 신고 나가도 모두가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되도않는 농담을 던지고 킬킬 거리기도 했었다.
근데 기약없는 약속이 무안해질 정도로 고등학교 1학년 여름이 지난 후에 '보세 붐'이 일어났고, 그때부터 우리는 시험기간이 끝나면 기분전환삼아 삼삼오오 모여 동대문의 청대문, 밀리오레, 두타, apm 등에 몰려가서 보세 의류를 샀었고, 그런 곳에서 쉽게 살 수 있었던 지금보면 싼티나는 그런 의류들이 대유행을 했었다.
그랬던 보세 붐은 고등학교 3학년때 까지도 이어졌고, 마침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난 추운 시점에는 일명 '사파리 자켓'이라고 하는 허리에 벨트가 있는 자켓이 유행이었는데,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덩치는 큰데 성격은 의외로 온순하면서 오기가 없어서 대놓고 무시를 당했었던 녀석(A라고 하겠음) 한명이 사파리 자켓을 하나 사고 싶다고 좀 봐달라는 얘기를 해서 무리를 한번 꾸려서 동대문으로 가는 일이 있엇다.
난 별로 살 것도 없었고, 애초에 동대문을 가는 목적이 A의 사파리 자켓을 찾아주는 것이어서, 열심히 사파리 자켓을 찾아주고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Free size 외에는 사이즈라는 개념이 없었던 동대문의 특성 탓에 어딜 가도 이 녀석 몸뚱아리에 맞는 사파리 자켓이라는건 없었고, 어느 상점을 들러도 봄버는 관심없냐는 헛소리만 들어서 거의 반 쯤 포기한 상태로 apm에 갔었다.
그 당시 apm과 밀리오레는 동대문 상점 중에 믿고 거르는 곳이었는데, 밀리오레는 일단 퀄리티 부터가 당시 보세 붐으로 그나마 올라오던 다른 동대문 상점에 비해 뒤떨어져 있었고, apm은 은근 협박으로 강매시키는 분위기가 있다는 루머가 있어서였다.
그러니, apm을 갔었다는건 그만큼 답이 없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apm에서도 사파리는 결국 찾지 못했고, '코끼리에게는 코끼리에게 맞는 옷을 찾아야지, 사파리 자켓은 코끼리한테 입히는 옷이 아니다. 어딜 가도 못 찾을테니 봄버나 봐라' 라는 식의 비아냥을 들어가면서 그 A라는 녀석의 표정은 점점 썩어들어갔는데, 결국 사파리 자켓 찾는다는 목적이란건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게 기정사실화 되면서, 나는 그냥 내가 입을 옷이나 보면서 돌아다니던 중에 꼭 맘에 드는 티셔츠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기억해보자면 딱히 특별한 부분이 없어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당시에는 맘에 들었으니 멈춰서 가격을 물어봤을거고, 얼마였는지 조차 기억은 나지 않는데, 나는 상점 형한테 담배 한 갑 가격 정도만 깎아달라고 했고, 그 형은 매몰차게 거절했고, 나는 그럼 담배 반갑 정도라도 깎아달라면서 천원을 제시했는데, 그게 그 기적의 천원의 논리 설교를 시작한 화근이 되고 말았다.
상점 형은 우리들을 상점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더니 개정색을 하면서 천원을 깎아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시끌시끌 해지니 주변에 할 것 없던 다른 형들이 와서 원 형태로 우리를 포위했고, 결국 가뜩이나 입소문 안 좋은 apm에서 협박으로 강매시키는 형들이 일산에서 놀러온 고딩 3명을 포위하고 갈구기 시작한거다.
그 형의 논리는 간단하게 '우리에게 천원은 천원 일 수도, 십만원 일 수도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였는데, 그 날 뭐 여친이랑 싸운건지, 사장이랑 말싸움을 한건지, 흥정하는 놈들에게 지쳐서 그랬는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그 천원 깎아주기 싫어서 개정색을 하면서 저런 개소리를 뱉는건 영업직에서 거의 10년 정도를 근무했던 지금 시점에서 되짚어봐도 이해가 안가는, 그리고 앞으로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말 그대로 '개소리'였다.
그렇게 10분 좀 넘게 개소리를 뱉다가 우리를 포위하던 포위망은 풀렸고, '이러다가 강매하는건가?'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강매에 대한 압박은 없어서 우리는 한층 다운된 분위기로 apm을 나와 일산으로 향했다.
그 후로 A와는 동대문을 같이 간 적이 없었다.
한창 수능 끝나고, 전형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매일 술이나 마시면서 친구들이랑 놀거나, 여친이랑 데이트 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중 라페스타를 지나가다가 A와 마주쳤는데, 결국 본인 사이즈에 맞는 사파리 자켓을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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