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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 (The Power of The Dog, 2021) 리뷰

Cogitation/Film Review

by Mr. Lazy 2021. 12. 2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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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난 엄마가 행복하기만 바랐다. 
 엄마를 돕지 않으면 난 사내도 아니지. 
 엄마를 구할 수 밖에.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시편 22장 20절)

누구나 어떤 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그에 반하는 입장을 가진 개인 혹은 집단을 만나게 될테고, 그에 따라 우리는 피아식별이라는걸 하게 된다. 여기서 선과 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선과 악이라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佊와 我만 나뉠 뿐이다. 근데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우리는 佊를 惡으로, 我를 善으로 인식해버린다. 한 마디로 무의미한 짓거리들 하고 계시다는거다. 

몬태나의 한 부유한 목장을 운영하고 버뱅크 형제의 얘기를 다룬 파워 오브 도그는 카우보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필과 카우보이들에게는 멸시를 받는 듯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필이 감싸는 필의 동생 조지가 등장한다. 나중에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필은 본인의 목숨을 구해줬던 브롱코 헨리라는 인물을 동경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던 그 사건에서 그와 나체로 교감했던 일 때문인지 남성 신체에 대한 관심이 있는 듯 보이며, 그 때문인지 조지에게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써주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인다. (사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은 남성 신체에 대한 관심과 브롱코 헨리에 대한 애정 정도였지, '그가 동성애자였다' 라고 단정지을만한 부분은 없기는 하다)

필과 대조적으로 조지는 터프한 카우보이의 모습도 아니면서, 사업가의 기질을 보여주는 장면도 없고, 그냥 덜떨어진 듯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목장 경영 25주년을 축하하러 방문했던 여관에서 미망인 로즈를 본 것을 계기로 애정 공세 후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젓가락 처럼 마른 몸매에 여린 모습을 보이는 듯한 로즈의 아들 피터는 끼워팔기 상품처럼 버뱅크 가에 오게 된다. 그리고 갈등이 시작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경 시편 22장 20절은 전혀 중의적인 표현이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중의적인 표현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필의 입장에서는 로즈의 등장이라는 것이 개의 세력(The Power of The Dog) 인 것이고, 피터에게는 어머니를 알콜 중독에 이르게 해버렸던 필의 존재가 개의 세력이 되버리는 부분이다. 애초부터 조지와 로즈의 결혼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필의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조지가 가진 재력의 덕택을 보려는 속셈인지, 피터는 목장에서 떨어진 곳의 대학을 다니게 되고, 자연스럽게 필의 화살은 전부 로즈에게 향한다. 소위 말해 보일 듯 말 듯 심리적으로 갈구기 시작한건데, 멘탈이 부서진 로즈는 한 잔 두 잔 술에 의존을 하다가 결국 알콜 중독이라는 상황에 빠져버리는거다. 

여름 휴가를 이용해 목장에 다시 도착한 피터는 이 상황을 모두 목격하게되고, 결국 조금씩 본인에게 마음을 열었던 필에게 철저하게 복수를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 중 이를 복수라고 알 수 있는 인물은 피터 밖에 없다. 필의 시신이 관에 안치되고, 조지와 로즈가 포옹을 하고, 이를 바라보던 피터의 옅은 미소와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원작 소설에서는 필이 절대적인 악인 인냥 그려졌다고 하는데, 사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원작 소설을 보더라도 나는 이 부분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까, 그 부분을 명확히 하려면 선과 악이라는 것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라는게 필요하다는건데, 이게 존재하지 않으니, 판단이 불가한 영역이 되어버리는거다. (그리고 설사 현대 법에 의해 판단을 내린다해도, 법은 갈군 사람 보다 간접적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게 더 중죄라는 챔피언 벨트를 걸어주겠지)

니체부터 푸코, 그리고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흐름에서 다루었던 것 처럼, 시대의 주요 담론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본인들 담론의 질서라는 것을 사회 보편적인 질서라는 것으로 확장시켜 가는데, 예를 들어 기독교적 담론이 지배했던 서구에서 기독교가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지식들은 추앙을 받았고, 기독교가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지식들은 철저하게 배척을 당했다는 것이 그걸 명백히 보여준다. (저런 특정의 환경 속에서 성장한 인간은 주체적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말이지) 따라서 우리가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 일련의 도덕, 문화, 법, 풍습 등 이라는 것은 고정 불가변한 것이 아닌, 시대에 따라 변하는 카멜레온 같은 것이었고, 특정 시대에 정착했던 특정 시대정신이라는 것도 정당성이라는 것을 부여받을 근거는 없다는거다. 

근데 또 더 나아가 우리의 인식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기반으로 사고되고, 표현되는 것인데,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조차 절대적인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기표 간의 차이로 발생하는 미끄러짐을 통해, 즉 차연을 통해 기의를 연기시킬 뿐 이라는거다. 한 마디로 절대 불변의 인식 논리라는 것은 부재한다는 것이니, 아무리 세밀하게 선과 악에 대해 정리한 근거가 있다고 한들, 이데올로기를 표현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는거다. 결국 승리한 담론을 가진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그 시대의 선과 악이 된다는 명백한 결론이 도출된다는거지. 

그렇게 봤을 때 파워 오브 도그에서 등장하는 필 버뱅크라는 인물을 악인으로 판단하는 의견들이 많이 보이는 것은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게 현대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니까. 그 정도로 현시대가 보여주는 이데올로기의 탄압력은 엄청나보인다. 

씁쓸한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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