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녀포비아 (feat. 그만 좀 징징대라) 20221007
사실 뭐 '한녀'라는 존재들에 대해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가진다고 한다면, 그건 그 대상에 대한 그만큼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서, 평소에 일관적으로 '무관심'의 영역에 그 대상들을 둔다는게 포비아라고 얘기하기에도 어불성설이고, 평시에는 무관심의 영역에 두기에 어떤 특정한 감정을 가진채로 살아가지도 않지만, 정말 말 그대로 무관심한 상황에서도 내 의지와는 다르게 그 대상이 거슬리는 순간은 있을 수 있다.
그런 거슬리는 순간 조차 최대한 피하려고는 하는데,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그 거슬리는 순간이 매일 저녁 6시 30분 경에 내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기 전 건물 1.5층의 야외 테라스에서 담배를 필 때 항상 그곳에 있는 그 년과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해야겠다.
사실 살집이 좀 있는 몸으로 보이는 것 외에는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는 년이긴 한데, 그 보지 못한 얼굴도 어느 정도 짐작은 가는게 대충 몸집과 목소리만 들어도 어느 정도 관상이 예측 가능하다는 점이고, 그 목소리가 뇌리가 굳이 깊게 박힌 이유도 내가 심히 거슬림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그 목소리 때문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목소리가 거슬린다는 점 보다는 발성의 톤과 그 톤으로 주절거리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아도 귀로 들어오는 대화의 내용 때문이라고 해야겠는데, 왜 흔히들 한녀의 태도를 얘기할 때 표독스럽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딱 그 표독스러운 발성 톤에 징징거리는 얘기들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는게 참 거슬린다는거다.
그러니까 매일 저녁 6시 30분 정도에 퇴근하고 머리 좀 식히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항상 징징거리는 얘기를 들으면서 담배를 펴야한다는거지. (지금도 귓가에 그 징징거림이 맴도는 듯 하다)
근데 내용도 참 한결같이 누구에 대한 뒷담화, 누구 남친에 대한 품평, 누구 남친 태도에 대한 얘기, 누구 남친 이거 별로네 저거 별로네 이거 이해 안가네 저거 선 넘었네, 뭐 이런 본인 인생에 하나 보탬이 될거라곤 없을만한 얘기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한다는 얘기인데, 매일 비슷한 대상에 대한 불평인지 아니면 매일 다른 대상에 대한 불평인지 (그렇게 매일 반복되는걸 감안하면 매번 대상이 다르지 않은 이상 소재거리 찾는게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어쨌든 불평거리를 만들어서 그렇게 수화기 너머로 징징거리는 발성 톤 유지하면서 떠들어 댄다는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그걸 들을 때 마다 '한녀포비아'라는게 찾아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일 불평거리를 찾아내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렇게 매일 불평만 한다는 것도 신기한게, 인생을 얼마나 부정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살고있으면 그렇게 매일 쏟아지는 불평만 가능한건지, 나 같으면 불평을 쏟다가 그 부정적인 내용에 내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멈출 것 같은데, 오히려 그 스트레스에 희열을 느끼는 영역이라서 가능한건지, 아니면 인생 불평만 하면서 살아가니 그저 무덤덤해져서 불평을 하는 것 자체가 인생의 패시브가 되어버린건지, 어째 긍정적인 내용은 한톨도 찾아볼 수 없이 매일 그런 부정적인 내용만 그 ㅈ같은 말투로 뱉어내는지, 쓰다보니 이게 같은 인간은 맞는건지 라는 의심까지 드는 듯 하다.
근데 사실 그런거보면 왜 굳이 한녀가 행복지수가 최저인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불평이라는 것이 무서운건 불평이라는 것을 했을 때의 후련함보다는 (사실 후련함이 있는지도 의심스럽지만) 그 불평을 뱉으며 나오는 부정적인 스트레스가 오히려 본인을 잠식시켜 버리는 것에 있는거라고 보는데, 그렇게 매일 징징대며 뱉어내는 불평과 함께 본인을 부정성의 영역으로 푹 디핑시켜버리니 행복지수가 높아질 개선의 여지조차 없는거지.
뭐 그렇다고 이제와서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기에는 이미 살아온 인생 자체가 불평 그 자체였으니, 한계효용이 감당하지를 못할테고 말이지.
결국 불평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거다.
그러니 딱하게도 매일 몇 분 혹은 몇 시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그 쓰잘데기 없는 징징거림에 투자해야하는거고, 그 투자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행해지니, 밖에서도, 집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내가 어느 공간에 있던 상관없이 튀어나오니, 그걸 듣다 못한 주변인들은 패싱을 해버릴테고, 결국 서로 징징거리는 것들끼리 서로 수화기 너머로 징징거리며, 라포를 유지하며, 그리 심리적으로 부둥켜 안고 함께 늙어가는거겠지.
그 징징거림에 하도 불쾌감을 느끼다보니, 이제 길거리에서도 한녀의 목소리가 들리면 징징거리는 것처럼 들리는 듯 하다.
아니면 실제로 징징거리는걸 듣는걸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