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Lazy 2022. 10. 5. 15:20

그 놈을 왜 '허당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그 유래는 기억이 안나지만, 암튼 허당구 혹은 그냥 당구라고 불렀다. 

확실히 기억나는건, 당구를 잘쳐서 그렇게 부른건 아닌걸로 기억한다. 

당구는 5월 군번으로 포반에 들어와서 4월 군번인 나와는 동기였는데, 8사단 고유의 이상한 앞뒤 1개월은 동기가 되는 이상한 구분법 덕분에 3월 군번이면서 나와 동기였던 섹킹과는 선후임 관계였다. 

처음에는 내가 3소대 소속이어서 접점이 거의 없었는데, 내가 작전계원으로 보직변경이 되면서 같은 소대가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짜증나게 굴면 내가 직접 갈궈봐야 통하지 않을테니, 그냥 당구한테는 선임이면서 나한테는 동기인 섹킹한테 갈궈달라고 했는데, 뭐 8사단 동기 시스템을 악용한 사례라고 해야겠지. 

당구는 미아리 근처에서 살면서 휴대폰 대리점에서 일하다 온 녀석이었는데, 폰팔이답게 참 말이 많았다. 

특히나 상스러운 말들로 분위기 메이킹을 잘하기도 했는데, 그런 부류가 군대에서 인싸가 되기는 좋은 성격이었지. 

결국 그 말 많던 성격을 잘 살려서 전역 이후에도 폰팔이를 하다가 대리점 운영까지 하는 것 같던데, 이 녀석 만큼 전역 후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었던 녀석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미 돌아갈 자리가 정해져 있었으니까)

말 많고, 사람들이랑 엮이는거 좋아하는 성격 탓에 당구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었던 것 같은데, 한번 같이 휴가 일정을 맞춰서 나갔던 날에는 여자 소개 시켜준다며 굳이 나를 미아리의 술자리로 부른 일이 있었다. 

정말 여자 한명이 있긴 했는데, 문제는 그 일정에 같이 휴가 나왔던 중대 휴가자들 중 서울 출신들은 다 와있었다. 

그러니까 그 모두에게 여자 소개 시켜준다면서 부른거다. 

그 날 당구에 대해 알게된게, 술자리에서 본인이 누구한테 전화를 하거나, 누구한테 전화가 오면 항상 2가지 결론으로 귀결이 났다는건데, '내가 갈게' 아니면 '니가 와' 였다. 

그렇게 미아리에서 4명이 모여 시작된 술자리는 당구 지인들로 10명 가까이가 되기도 했었다.

나중에는 당구랑 같이 휴대폰 대리점에서 일하던 형 한명이 술을 사준다고 오면서 건대입구의 나이트같은 포차로 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는 또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추파 보내면서 치근덕대더라. 

다른 테이블에 앉은 여자 2명을 계속 쳐다보더니 나한테 '야 저기 다 꼬셨어. 가서 이리로 오라고 하면 돼' 라고 하길래 내가 가서 물어보니 그 여자들은 '제발 그만 좀 쳐다보라고 해주세요' 라고 했고, 그 얘기 그대로 전달하니 바로 다른 테이블로 눈길을 옮겼었는데, 그 모습이 꽤나 우스웠어서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런거 보면 참 말빨 밖에 없는 녀석이긴 했던 것 같은데, 은근 노력파였다. 

결국 그 날 나는 포차에서 꼬신 이름도 기억 안나는 여자애와 나갔고, 나가는 시점에 당구는 결국 꼬신 테이블 하나에서 다른 여자애와 술을 마시고 있었고, 당구 술 사준다고 온 형은 당구가 그렇게 여자 꼬신다고 패싱해버리니 혼자 뿔나서 앉아있다가 술 값만 계산하고 나간다고 하더라. 

전역 후에 한번 아이폰 알아볼 일이 있어서 연락을 했었는데, 그 이후로는 뭐 잘 살고 있겠지 정도인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