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itation/Long

동두천 20220810

Mr. Lazy 2022. 8. 10. 15:15

 내 고향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동두천 보산동에 살았는데,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집 옆으로 흐르던 신천 확장 공사를 하기 전에는 상습침수지역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상습침수지역이었다는 것이 동두천과 연을 끊은 계기가 되기도 했고 말이지)

사실 뭐 고향에 대한 환상이라던가, 코 끝이 찡해지는 무언가는 없는 것 같은데, 그나마 하나 좀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는 것은 동네에 있던 놀이터에 아주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그 밑에서 할머니 한분이 달고나를 100원에 팔았던 것이었는데, 여름만 되면 그 느티나무 그늘에서 쉬다가 사먹는 달고나가 맛있었다는 정도 인 것 같다. 

그 외에는 전부 부정적인 기억이 가득인 것 같은데, 일단 무엇보다 동네가 지금 생각해도 참 구렸다. 

당시에 동두천에는 미군 부대가 꽤 큰 구역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미군 부대가 있어서 생기는 장점이라고 하면, 시내 중앙에 버거킹이 있었다던가, 미군 부대에서 나눠주는 레이션을 생각보다 쉽게 구해서 먹어볼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 레이션이 생각보다 질이 아주 좋았다는 점, 미군 부대에서 배식하고 남은 미트볼 스파게티 같은 것을 포장도 뜯지 않은 알루미늄 팩킹 상태로 얻을 수 있었던 점, 동네에 미군 부대 PX에서 사온 물건들을 가지고 살짝 마진을 더해 미제를 파는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점, 그 할아버지가 파는 냉동피자가 맛있었다는 점 등 이었다. 

근데 모든 것이 균형을 맞추려고 하듯, 이런 장점도 상쇄시켜버리는 단점이 있었는데, 그게 동네의 질 이었던 것 같다. 

일단 미군 부대가 근처에 있으니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윤락업소들이 꽤나 있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짖궂게 우리는 그런 업소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을 '기생'이라고 부르면서 수군덕 거리곤 했었고, 그 윤락업소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은 꼭 어떤 특정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아닌, 내가 동네에서 만나면서 같이 놀곤 했었던 어떤 친구의 엄마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세탁소를 운영하시던 한 아줌마는 어느날 아빠가 꽤나 큰 돈을 주고 구매하셨던 정장의 자켓을 망가뜨리면서, 그리고 그 자켓 망가뜨린걸 책임회피 하면서 그 세탁소의 품질과 고객관리가 막장이라는 것을 증명해준 일이 있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몇 달 후에 아침 이른 시간에 그 아줌마가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면서, 왼손에는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는 검은 봉다리 하나 손가락에 끼워 돌리면서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동네 애들 얘기에 의하면 그 아줌마가 기생이 되었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었던 기억이 있다.

동네가 그런식으로 경제적으로 궁핍하거나, 미군에 의지하는 방법 외에는 답이 안 나오는 동네였기에,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덕분에 지금은 iPad parenting이라고 불리는 형태의 양육을 받는 아이들은 알아서 구려지는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동네가 평균연령이 높다보니, 가장 활발하게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곳은 시내 보다는 동네 노인정이었고, 매번 할아버지를 찾아 노인정에 들어가면 화생방을 하듯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담배연기와 마치 노인정 디퓨저 마냥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당시의 진로 소주 냄새를 맡아야 했었다. 

어떤 집에 어떤 일이 생기면 온 동네 노인들이 집으로 다 모이는건 당연한 일이었고, 한번은 치매 걸린 노인 한분이 우리 집에 수십명이 밥을 먹고 있던 자리에서 밥상 위에 앉아버리는 일도 있었고, 할배들이 길거리에서 술에 거나하게 취해 노상방뇨를 하는건 뭐 흔한 광경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뭔가 향수가 느껴지는게 아닌 찌린내 가득 나는 듯한 그런 기억들만 가득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사실 '그 동네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나 조차도 그 찌린내 가득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의심이 든다. 

다행히 우리 부모님이 내가 9살일 때 거의 도망치듯 나와 동두천을 벗어났고, 물론 이사 나온 후에도 우리는 매주 주말마다 동두천에 가야했지만, 그래도 그곳에 사는 것과, 다른 곳에 살면서 그곳을 방문하는 것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해 폭우가 정말 심하게 쏟아졌던 해에 동두천 집 옆의 신천의 불어난 물이 동네로 밀려들어왔고, 그렇게 동네는 침수되어서 내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해 수해민이 되었고, 대문이었던 유리창이 깨져버린 그 집에서 얼마간 간이 침대를 놓고 생활하다 정부 지원금을 얼마 받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동두천과의 연은 그 때 끊어졌다.

현재는 우리가 살던 집을 헐고 신천 유역 확장 공사를 한 상태라고 해서 예전처럼 침수되지는 않는다고는 한다.

한 마디로 내 고향 집은 없다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