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20220602
사실 이런 글을 쓰기에는 러시아가 와이프의 출신 국가라는 탓에 '친러' 성향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꺼려지는 부분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런 친러 성향을 감안하고서라도 여기저기 보이는 각종 오판과 개소리들에 대해서는 그냥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많다는 불만이 생겨버렸다는게 가장 큰 명분이 된게 아닐까 싶다.
간단하게 백그라운드를 얘기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인연을 맺었던 러시아인들은 거의 대부분 애국심이 상당히 강하며, 이 애국심은 과거 소련 시절에 지구 상에서 넘버 2를 찍었다는 팩트에 기인한다.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애국심이라고 해야하겠다)
내 와이프는 그 애국심이란게 강한 편이면서 푸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는데, 어쩌면 '독재는 나쁜 것'이라는 사상교육을 어렸을 때 부터 주입식으로 받아왔던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반푸틴의 성향이 우리가 예상할법한 일반적인 러시아인에 대한 모습이겠지만, 의외로 푸틴에 대한 강한 지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으며, 그건 단순한 세대 간의 입장 차이라기 보다는 개인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차이라고 보는게 더 나을 듯 하다. (푸틴에 대한 지지율이 물론 장년, 노년 층에 더 기반을 두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청년 층에서는 무조건 반발을 한다라는 것이 어불성설일 정도로 지지율이 상당하다)
결론적으로 국가라는 아이덴티티와 지배자라는 푸틴의 아이덴티티는 동일시 되기도, 동일시 되지 않기도 하는데, 어디처럼 대놓고 부정선거가 이뤄지는 국가가 아닌 이상은 그 높은 지지율이 국가와 지배자의 아이덴티티를 동일시 하는 것처럼 보는 시각이 현지에서는 더 통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겠지만, 그게 또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닌 전쟁의 상황이 된다면 그 입장이 천차만별로 갈라지기에 전쟁을 일으킨 국가라는 이유로 그 국가의 구성원을 싸그리 잡아서 욕하는 피상적인 태도를 앞에 두고 있으면 저게 인간이 하는 사고가 맞는지에 대한 의심부터 든다는거다.
반면 지금까지 내가 인연을 맺었던 우크라이나인들은 그와 반대로 애국심 보다는 러시아에 대한 반발심이 더 강했으며, 물론 그 증오감에 대한 역사는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는 또 다른 성질을 가지지만, 그 증오감이라는 성질이 발현되는 현실이란건 한국에서 조장해가는, 때로는 정치적으로 이용도 해먹는 반일감정이라는 성질과 큰 다를 바가 없는 듯이 보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보통은 더 강한 국가에서 더 약한 국가를 상대로 수탈하고, 출신에 따라 박해하는 등의 일들을 상상하겠지만, 현실에서는 러시아에 있는 우크라이나 인들은 그리 큰 차별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있는 러시아 인들이 단지 러시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는, 우리의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아직 탈출을 못했던 러시아 민간인들은 대상으로 한 무기 보급 받은 우크라이나 인들의 '사냥'이 시작되어서 라는 명분이 루머로 돌기도 했을 정도로)
정리하면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러시아인의 인식은 반발감이라기 보다는 그냥 인식을 안하는, 관심 없음 혹은 무시하는 정도라고 보는게 더 어울릴 듯 하고, 러시아인에 대한 우크라이나인의 인식은 일본에 대한 한국의 반일감정과 같이 근거없거나, 주입식으로 교육받아온 사상적 증오와 열등감에 기인한 어떤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위에 내가 서술한 것들은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얘기들이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얘기이거나, '푸틴'과 '젤렌스키'에 대한 얘기는 아닌 것인데, 이 상태만 놓고 본다면 그냥 지극히 인접한 두 국가가 형성되고 쪼개졌다가 합쳐졌다가 쪼개졌다가 하는 그런 긴 서사극 속에서 생겨날법한 다양한 민족 간의 갈등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냥 그저 그런 상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이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었을 때의 파급력이라는건데, 한국에서도 충분히 보여줬고, 보여주고있고, 앞으로도 보여줄 반일감정의 정치적 사용법이란 것 처럼, 우크라이나에도 반러감정의 정치적 사용법을 젤렌스키 정부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있으며, 그런 모습을 무슨 국가를 지켜내고 있는 영웅인냥 포장해내는 현대적 파시즘 선전활동은 그냥 보기에도 역겹기만 하다.
그럼 푸틴은 잘했냐? 라는 질문에는 그건 또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게, 이것도 마찬가지의 민족 감정에 대한 정치적 활용을 명분화시킨 것이라 보는게 나을 법 한데, 이건 우크라이나인을 상대로 한 러시아인의 감정선이라고 보기에는 러시아인들이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감정이 없고, 오히려 이건 과거 소련 시절부터 그들을 옥죄어 왔던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나토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감정선이라고 보는게 타당할 것 같다.
그러니 러시아군는 애초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으로 전쟁을 시작한게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 그리고 나토에 대한 견제의 차원에서 지정학적 완충지대의 확보를 목적으로 전쟁을 시작한거고, 애초에 전쟁의 목적이 우크라이나의 수복이라기 보다는 전쟁을 통한 협상에 있을테니, 러시아군이 전투에서는 이겼으나 전쟁에서는 패배했다는 것은 전쟁의 목적부터 핀트를 못 잡고 뱉어내는 개소리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되는거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봐도 나폴레옹의 광기가 돌아섰던 것이 러시아였고, 히틀러의 광기가 멈췄던 곳도 러시아였으니, 역사적으로 패전도 많았던 미국이 지들 맘대로 개입 못하는 것도 당연한거라고 본다)
흔히들 하는 얘기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국방력을 비교하면서 저런 국방력의 차이를 가지고도 쩔쩔 맨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전쟁이란 것이 단순하게 땅따먹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전쟁들이 보여줬던 사례이며, 몇 일 안에 키에브까지 함락시키리라는 예측 또한 외신들이 단편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던 '예상'인거지, 그 단편적인 시각을 넘어선 전쟁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은 개소리 가득한 오보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인거다. (내가 알기로 러시아군이 몇 일 안에 키에브를 함락시키는게 목적이라고 선전을 했던 적도 없었다)
파시즘이란게 무서운건 파시즘을 알면서도 파시즘의 선동에 당한다는 측면인데, 러시아가 과거 레닌의 역사적 삽질을 통해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켰었고, 소련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러시아가 그 공산주의 노선에서 벗어난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고, 우리 옆 국가에서 벌어지는 정보 통제나 해외 서비스 차단 같은 것이 상식적으로 일어나는 국가도 아니라는 것이 팩트이다.
그래서 코미디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직까지 과거 Partisan 보듯이 러시아를 바라보는 시각들이 빈번하다는건데, 현대의 파시즘을 누가 이끌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특히나 이 전쟁의 시작부터 벌어졌던 그 선전들을 보고있자면, 선전이란 것에 누가 당하고 있는건지, 그 선전에 당하고 있는 시각들이 얼마나 피상적으로 인터넷에 배설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한편의 씁쓸한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는 듯 하다.
전쟁이 어떻게 더 흘러갈지, 어떤 식으로 협상이 이뤄질지, 한치 앞도 알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한가지 확실하다는 느낌을 받는건, 푸틴은 잃을게 없을 입장까지 왔다는 것이고, 실제로 이 전쟁으로 인한 여파는 내가 파는 제품의 원가 상승과 그걸 명분으로 더 올라가는 물가, 그리고 어제 주유하면서 금액에 깜짝 놀랐던 영수증이 보여주는 듯 하다. (실제로 그 여파의 탓으로 유럽연합에서는 오히려 손을 들고 있는 것 +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피해자 프레임 선점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