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itation/Film Review

러브, 데스 + 로봇 (Love, Death + Robots, 2019, 2020, 2022) 시즌 1 - 3 리뷰

Mr. Lazy 2022. 5. 24. 17:22

 '언젠가 한번 정리는 해야지'라는 생각은 했었는데, 막상 생각만 하고 실천을 못했던 것들을 이제 실천해야겠다라는 스스로의 나태함을 깨우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드디어 쓰게 되었다. 

사실 여태 시즌 1 - 3의 모든 에피소드에 대한 리뷰를 쓰기에는 양도 많고, 그닥 인상깊지 않았던 에피소드가 많기도 했거니와, 단순 흥미 위주의 스토리들도 많았던 탓에 모두를 적지는 못하겠고, 다행인 것은 옴니버스 스타일로 각 에피소드 간의 개연성이라는 것도 없으니, 시즌, 순서 상관없이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부터 정리는 해보는 내맘대로 쓰는 리뷰가 되지 않을까 싶다. 

 

1. 시즌 3 EP 9 히바로 (JIBARO)

 단편적으로 본다면 여태까지 모든 에피소드 중에 시각 + 청각적 활용이 가장 두드러진 에피소드 였다는 생각이 들고, 당연히 모션캡쳐인줄 알았더니, 제작에 모션캡쳐가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란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한편의 현대 무용 작품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얼했다)

게다가 스토리의 주축이 되는 콩키스타도르 한 명이 (아마도 선천적) 청각 장애인이라는 것이 스토리를 매끄럽게 이어가는데 주요한 요소 였으면서도, 청각적인 효과(청각 장애인 입장에서 듣는 소리들은 리버브를 잔뜩걸어 볼륨을 죽인 소리가 양측으로 갈라져 마치 바닥에 깔린 구름마냥 퍼진다)를 표현할 명분이 되다보니, 그런 설정 하나가 전체 에피소드의 긴장감을 살려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 반해 스토리는 정말 단순한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순한 스토리에 비해 스토리가 함유하는 메세지라는 것은 단순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는 생략)

이 에피소드를 제작한 감독은 “이 두 사람은 잘못된 이유로 서로를 사랑하는데, 그것이 오늘날 현대인의 관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라고 했다는데, '잘못된 이유'라는 것은 물음표 나오는 부분이지만, 암튼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어떤 특수한 '목적성'을 가진 애정이라는 것에 대해 터부시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그런 목적성을 전부 배제한 무조건적인 애정에 대해 순수시 하거나, 이걸 넘어 신성시 하는 모습까지 모습들이 워낙 흔하다보니, 이게 '애정에 대한 시대정신'인가 싶어 한숨이 나오지만, 그런 시대정신에서 벗어나서 조금만 사고라는걸 해보면 애초에 '목적성'이 없는 애정이란 것 자체가 오히려 개연성이 없는 광기일 수 있다. 

히바로에서 보여주는 그 '애정의 목적성'이라는 것은 뚜렷하게 표현되는데, 문제는 이 목적성이 서로를 갉아먹는 행위였다는게 비극적 엔딩으로 필연적으로 통하는 통로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콩키스타도르가 원하는 재물을 위해서는 세이렌을 소비해야했고, 세이렌이 원하는 욕정을 위해서는 콩키스타도르가 소비해야했으니)

연애라는 것의 역사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고, 그 짧은 역사의 와중에 현대사회라는 버프 탓에 급류 보다 빠른 시대의 변화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수용하고 있는데, 그 어떤 시대보다 '소비의 비중이 높아지는 이 현대사회에서 목적성 자체가 상대에 대한 소비가 된다면 정해진 결말이란 것은 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상대에 대한 소비가 아닌 애정의 목적성이라는게 가능은 한걸까 라는 의문도 생겼고)

 

2. 시즌 1 EP 14 지마 블루 (ZIMA BLUE)

 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궁극적으로 찾으려 하는 것은 엄마의 자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열망이라는 식의 글을 본적이 있었는데, 뭐 그게 제일 편해서, 그 순간이 가장 안락해서 라는 등의 이유보다는 '수동성'이라는 영역으로 다시 회귀하고픈 열망을 얘기하는게 아니었을까 싶다. 

예를 들어, 한 거미가 거미줄을 쳐놓고, 그 거미줄 쳐놓은 영역만을 세상의 전부라 인지한다면, 그 안에서 거미는 자유로울테고, 거미의 자유의지로 거미가 인지하는 세상 전체를 향유하는 존재이겠지만, 그 거미가 인지하는 세상이 거미줄 외부로 향할 수록 거미의 자유의지로 향유하는 영역이라는 것도 초라해질테고, 거미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착각하는 부분이 자동성을 가질 때 자유로울 것이고, 수동성을 가질 때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규정짓는 부분이라고 생각들을 하는데, 사실 수동성이라는 것에 몸을 맡기면 자유라 인지하는 범위 자체가 축소되어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수영장 청소 로봇이었던 지마가, 지마 블루라는 고유색상을 만들 정도로 세상을 움직였던 예술가 지마가, 본인의 마지막 작품이라며 청중들 앞에서 선보였던 퍼포먼스는 본인을 절대적 수동성의 영역으로 끌고가는 모습이었으며, 그렇게 자동성으로 인한 자유와의 장벽을 앞에 두고 떠나 수동성에서의 극한의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사실 작화 자체는 그닥 맘에 들지 않았지만, 스토리는 전체 러브, 데스 + 로봇 중에 가장 뛰어난 수작이 아니었나 싶다. 

 

3. 시즌 2 EP 8 거인의 죽음 (THE DROWNED GIANT)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호흡이 느리게 전개되는 에피소드인데, 에피소드의 진행을 나레이션이 맡아 차분한 느낌이었고, 꽤나 긴 시간동안 과학자라는 나레이터가 이유모를 죽음 이후 해안가로 떠밀려온 거인의 시체를 관찰하면서 관측한 모습들을 극사실적 그래픽으로 묘사하여, 애니메이션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사실 거인이라는 것은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고, 이 매개체가 이끌어내는 것은 그 '거인의 죽음'이라는 이벤트를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인간들의 모습인데, 거인의 시신이 부패하면서 신체 곳곳에 낙서가 되고, 시신의 일부는 뜯겨나가고, 왜곡돼어 서커스장에 전시되기도 하고, 결국 사체가 얼마 남지 않은 순간부터 이벤트는 종료돼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게 된다. 

어떤 '이벤트성 이슈'라는 것이 우리에게 이런 존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현실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무수한 유투버들이 이 거인의 시체 옆에 가서 온갖 컨텐츠를 제작하고, 인스타는 온갖 해쉬태그를 붙여가며 인증샷으로 도배가 되었겠지. (그리고 누군가는 이를 비판할테고)

그리고 시체가 썩어갈 무렵, 컨텐츠가 바닥날 무렵, 모두가 거인의 시체 곁을 떠날테고 말이지. 

근데 그걸 비판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그냥 그런 뻔한 모습들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옆에 있는 인간들보다 더 살아있는 듯한 거인이 다시 부활해서 바다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4. 시즌 1 EP 6 요거트가 세상을 지배할 때 (WHEN THE YOGURT TOOK OVER)

 절대적 지성체가 세상에 도래한다면, 인간은 어떤식으로 반응을 하게될까? 라는 뻔한 질문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인 의존이라는 뻔한 답변이었지만, 그게 하필 '요거트' 였다는 부분이 신선하기도 했고, '그 요거트가 우리를 버리고 떠날까봐 두렵다' 전혀 자주적이지 못한 멘트에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는 에피소드였다. 

단순하게 절대적 지성체가 아니어도 꽤나 많은 부분을 AI가 대체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그 의존성이 인간에가 어떤 결론을 가져다줄지 (사실 이건 꽤나 시간이 흘러야 확인이 가능한 부분이겠지만) 클리셰처럼 많은 예측들이 있지만, 단순하게 교통체증의 상황에서 브레이크 밟았다 뗐다 하는 것 조차 귀찮음에 부분 AI 대체를 해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대충 어떤 결말이 될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에피소드에서 요거트가 해결하는 상황은 '국가채무를 1년 안에 없애는 방법'이라는 현재의 경제 위기 코앞에서의 상황에서 다시 한번 구미가 당길법한 내용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절대적 지성체가 아닌 AI를 가정하여 생각해보면, 결국 인간의 지성으로 만든 창조물인만큼 현대까지의 인간 지성이 만들어내는 모순이라는 것을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쩌면 의존하고 싶지 않다는 개인적 취향이 잔뜩 버무려져있는 의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5. 시즌 2 EP 3 팝 스쿼드 (POP SQUAD)

 블레이드 러너의 오마주가 너무 강한 나머지 블레이드 러너 애니메이션 판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기도 했지만, 약간 다르게 회춘기술을 통해 영생을 얻은 인류와 그로 인해 금지된 번식이라는 배경을 가진 에피소드다. 

영생, 참 달콤한 얘기일 수 있겠지만, '과연 영생이 생각한 것 만큼 달콤할까?' 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어떨까?'라는 질문과 답변처럼 상상에 깃댄 허무맹랑한 얘기 밖에 나올 수 없겠지. 

마찬가지로, 에피소드 상에는 그 영생을 맘껏 즐기는 모습의 사람들과, 그 영생을 맘껏 즐기는 모습의 사람들을 위해 아직까지 고전적인 방식으로 번식을 하는 사람들을 처단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영생을 즐기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는 듯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회의감을 느끼는 듯한 사람들은 불법임을 알고, 목숨이라는 리스크가 걸려있는 상황에서도 번식이라는 행위를 한다. 

인간성 상실이라고 봐야할까? 

오히려 저런 시대의 입장이라면, 번식행위를 막는 것이 오히려 도덕적이고, 번식행위자들과 그 결과물의 목숨을 끊는 것이 사회에 봉사하는 행위가 되는건 아닐까?

 

6. 시즌 3 EP 6 스웜 (SWARM)

 '종의 유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건 뭘까?' 라는 부분에 대해 오버마인드 처럼 보이는 스웜의 두뇌가 하는 멘트들이 인상깊었던 에피소드였다. 

'스웜'은 하나의 커다란 유기체로 묘사되는데, 그 구성 개체들은 각기 독립해있는 것처럼 보이나, 자각은 없는 상태로 스웜의 유지를 위해 각기 필요한 기능들을 수행하는 개체에 불과하며, 오버마인드 처럼 보이는 스웜의 여왕 (두뇌)의 통제에 의해 스웜이 유지되는 것으로 나온다. 

당연하게도 스웜의 생존을 위협하던 종족들이 있었으나, 그들조차 결국 스웜에 동화되어 그 안에서 기생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으며, 스웜의 여왕에 따르면 인간이 가진 지성이라는 것은 종의 유지 관점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는 기능은 아니라고 한다.  

질서와 통제, 그리고 각 개체들이 상실한 자각 능력. 

인류가 개인을 자각하는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만약 고대 이집트와 같은 문명이 현대까지 이어져왔을 시에 그 고대 이집트는 한 문명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각 개체들이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