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itation/Film Review

돈 룩 업 (Don't Look Up, 2021) 리뷰

Mr. Lazy 2021. 12. 28. 09:31

 근래에 시청했던 코미디 영화 중에는 탑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재밌다. 사실 그 정도 수준을 넘어서, 대부분의 코미디가 이런식으로 제작된다면 아마도 나는 코미디 영화 애청자가 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 그러니까 코미디인데, 웃기기만 한게 아니라 무섭기 까지 하다

보통 리뷰를 쓰기 전에 대략적으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어떤 생각들을 가지는지 검색을 해보는 편인데, 이 영화를 통해서 트럼프 지지자들을 풍자한다는 리뷰들이 생각보다 꽤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리뷰를 적는다고 해도 보통 1주일 이상 정도는 숙성을 시켜서 쓰는 편인데, 이 영화에 대해 숙성 과정을 패스하고 키보드 두들기고 있는 것이 어쩌면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서 였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뭐 눈에 뭐 만 보인다고 하지. 

사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특정 인물 지지자에 대한 풍자라기 보다는, 기득권에 대한 풍자라기 보다는, SNS에 빠져사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풍자이고, 포퓰리즘에 대한 풍자였겠지. 그리고 공교롭게도, 굳이 통제하지 않아도, 지금처럼 SNS가 활개치는 현시대의 배경에서는 정보가 알아서 통제되는, 포퓰리즘이 해야 할 큰 일 하나를 줄여주는 투쁠급으로 숙성된 개, 돼지들이 가득한 사회의 현주소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근데 또 큰 배경은 종말이다. 

그러니까 혜성이 떨어진다.

말 그대로 직격탄으로 5 ~ 10km가 되는 혜성이 지구로 돌진해오고 있고,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인류 뿐 아니라 지구 자체를 종말을 피할 수 없을 각이다. 백악관에 보고하니 상황을 지켜보잔다. 흡연 사실을 공개해서 지지율이 3% 올랐다고 자랑하는 여대통령은 그냥 관심끌어서 당선된 대통령 쯤으로 보인다. 그녀가 민주당인지 공화당인지 영화에서 공개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걸 보고 트럼프 지지자들에 대한 풍자라고 하는 리뷰들은 어떤 부분에서 그런 소년탐정 김정일 급의 추론을 할 수 있었을지 궁금한 부분이네) 그러니까 그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얘기고. '포퓰리즘이 정말 끝판 막장까지 장악한다면, 현실에서도 저런 대통령이 우리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근데 대통령만 그런게 아니다. 미디어도 다를 바가 없다. 심드렁한 백악관을 뒤로하고 찾아간 토크쇼에서는 종말이 다가온다고 정색하고 눈물을 보이며 퇴장하는 케이트에게 별로라고 하고, 매체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포퓰리즘이 극악으로 치닿은 영화의 배경에서, 부정적인 얘기는 주제가 어떤 것이든 환영받지 못한다. 모두가 불편해한다. 대중은 불편하면 귀를 닫아버리고, 결국 필요해도 필요하지 않은 취급을 받아버리는거지. 정작 이 혜성의 돌진과 그에 대한 대책 수립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오글소프 박사조차, 이 혜성에 대한 얘기보다는 라일리 비나와 DJ 첼로의 스캔들에 더 관심을 보이는 듯 하다. 그리고 케이트의 전남친은, 케이트가 비호감 이미지로 관심을 얻자, 그녀와 잤다는 기사를 쓰면서 어그로를 끌려고 한다. 

참 재밌는 현상이다.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도록 해놨더니, 오히려 정보가 알아서 통제가 된다. 달리 말해 자유를 허락해줬더니 되려 지들끼리 자유를 박해한다. 뭐 이런식이면 독재 못하게 해놨더니, 지들이 되려 독재를 만들어내는 구조도 가능하겠네. 응 그게 가능하다. 그렇게 180석도 만들어낸거니까

인플루언서라는 존재와 그 어감이 개인적으로 무섭게 다가오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정치성'을 띈다는 이유로 인해 뉴스, 신문 등을 포함한 공식적인 매체들이 '공신력'이라는 것을 잃기 시작했다. 근데 해당 매체들이 공신력이라는 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던가, 그 공신력 없음에 지친 대중들이 새로운 매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플루언서들의 입김이라는 것에 정보 전달을 위임하게 되는 기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듣기 좋은 얘기들을 해주니, 이 사람이 하는 말은 사실인거야' 라는 정신병이 퍼지기 시작한거지. 근데 그 정신병이 파급력이 너무 크다. 

그리고 더 문제는, 이 정신병에서 깨어나도록 일침해주는 메세지들은 철저히 배제되고, 그 정신병을 이해하면서 어루만져주는 듯 이용할 줄 아는 메세지들은 환호와 갈채를 받는다. 그들은 정신병에서 깨어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차라리 그런 신념이면 다행이라 느껴질법하게, 정신병이란 자각조차 없는게 대부분이기도 하고. 그 정신병자들의 관심을 얻는다는 것은 결국 자본이다. 방송인은 시청자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인들은 지지자를 유지하기 위해, 관심이 필요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중들이 원하는 정보는 유통되고, 대중들이 듣기 싫은 정보는 차단된다. 

근데 정보들이 퍼날라지고, 공유가 되는 것은 몇몇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미국에서는 4chan이나 Reddit 같은 곳이겠고) 근데 그런 커뮤니티들이 대부분 온갖 패드립과 욕설과 지들끼리 공유하는 일련의 유머 코드가 난무하는 유머 커뮤니티라는거다. 포스팅되는 글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목을 끌게되는 글들은 그런 유머가 섞이지 않으면 이목을 끌기 어렵다는거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딱 그 모습 아닌가. 난독이 생기는건 난독이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난독을 만들고 있어서가 아닐까? 

근데 사실 시작부터, 어떤 매체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정치성이라는 것이 배제될 수는 없다. 의견이라는 것을 전부 제외한 니트한 형태의 정보 전달이라는건, 직접 그 상황을 재현해서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오감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는 장치가 없는 이상은 불가능할테니까. 그건 정치성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의 한계이자, 언어의 한계인거고, 그걸 극복하려는 철학이라는 것은 데리다 이후 잠시 제동 걸려있으니까. 그러니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뭐가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옳고 그른지 결정하는 권한을 타인에게 양도해버리는 당신들의 현주소에 대한 것이란 거고, 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을 생각 좀 해보라는거다. 

SNS에 빠져버린, 포퓰리즘에 장악되어버린 대중의 현주소는 누군가 그렇게 유도해서 그리되어 버린 것이 아닌, 스스로 그렇게 살아가고 계신다는 것에 문제점이 있는거다. 그리고 정작 SNS에 빠진 분들이, 포퓰리즘에 의해 한 표 행사하시는 분들이, SNS를 비판하고, 포퓰리즘을 비판하신다. 대체 뭐 어쩌자는건지 참.

근데 영화는 또 여기서 뻔한 종말이라는 결말로 향하지 않는다. 떨어지는 혜성에서 가치를 창출하려는 기업가가 나타나는거지. 혜성에서 채집 가능한 자원의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계산이 된다고 한다. 혜성이 다가오는 시점에 채집 드론들을 보내서 자원들을 캘 계획이라고. 하필 또 그걸 발표한 시점이 혜성 폭파하겠다고 우주선을 쏘아올린 시점이다. 대기권을 돌파하던 우주선들은 나선형 궤도를 그리며 다시 지구로 복귀한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를 보는 듯 하다.

대중들은 혼란스럽다. 뭘 지지해야할지 모르겠다. 판단을 내릴 깜냥도 없거니와, 구태여 판단을 내려줄 누군가도 없는 듯 하다. 그렇게 중립기어를 박고, 누군가에 의해 판단이 내려질 순간을 기다린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회사에서 의사결정권자들이 안락의자에 앉아서 실무는 다 넘겨둔채 딩가딩가 의사결정만 하는 것에 치를 떠는 분들이, 의사결정만 할 시간을 기다린다. 누가 누굴 욕하는건지 참 애매해지는 부분이다. 결국 국제적 정치 대립구도에 따라 편이 나뉘고, 판단이 나뉜다. 혜성은 점점 다가오는데, 지구는 고요하다. 혜성이 육안으로 관측되기 전 까진 말이지. 

이제 정말 혼란스럽다. 그리고 사업가의 채집 드론 프로젝트는 실패해버린다. 그에 반하던 랜달과 케이트,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의 혜성 폭파 프로젝트도 실패해버린다. 혜성은 다가온다. 결국 혜성은 떨어지고, 지구는 종말한다

덜 떨어진 역할로 나오는 여대통령 아들은 종말에서 살아남아 스트리밍을 하면서 구독자와 팔로우를 요청한다. 몇몇 기득권으로 보이는 분들은 지구를 탈출해서 22천년 즈음 지난 시간 후에 냉동 수면에서 깨어난다. (사실 이들이 기득권인지, 아니면 랜덤 선출이었는지, 뭐 어떤 기준으로 탑승하게 된건지는 영화에서 설명이 안된다. 근데 명탐정 코난들은 이걸 기득권이라고 비판하신다) 근데 그들을 기다리던 새로운 행성이 그닥 환영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영화에서 직접 다뤘던 얘기였기도 했고, 여러가지 도 넘은 음모론에서도 꾸준히 나오는 클리셰 같은 얘기지만, 대중에게 공개되는 정보라는 것은 처음부터 통제된다. 그리고 대중들에게서 한번 더 통제를 당한다. 어떤 진실의 목소리로 아우성을 친다고 해도 유튜브 알고리즘 같은 시스템은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대중들 조차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그들이 듣기 '불편하다면' 말이지. 결국 세상은 내가 듣고 싶은 얘기들로만 가득차게 된다. 

마치 듣고 싶은 얘기들만 들으면, 세상이 그리 될 것 같다는 듯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