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길티 (The Guilty, 2021) 리뷰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하다.
보는 내내 드는 느낌은 그랬는데, 영화 자체는 아주 친절하게도 영화에서 벌어지는 실제의 사건에 대한 장면은 1분 조차 보여주지 않으며, 911 긴급 신고 센터에서 해당 사건에 지나칠 정도로 몰입하는 '조'의 모습이 팔할 이상을 차지한다. (실제로 해당 사건에 대해 보여주는 잠깐의 장면 조차 그냥 흐릿한 모습으로, '아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긴 하구나' 라는 짐작 정도 할 수 있을 정도에다가, 정작 사건의 당사자들이 아닌, 관계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삽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
근데 또 답답한 전달 방식과는 대조적으로 영화의 배경 자체는 상당히 어수선하다.
캘리포니아에서 LA로 퍼지고 있는 산불과 그로 인해 911 현장 요원은 부족한 상황에다가 조가 일하고 있는 센터 스크린으로 비춰지는 산불의 모습은 마치 대재앙이 예고된 무슨일이 벌어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들게 만든다.
그리고 조라는 인물은 원래 경찰이었으나, 과잉진압 같은 형태로 살인을 저지른 죄로 신고 센터에서 임시로 일을 하고 있으며, 내일 앞둔 법정 공판에서 본인의 파트너와 함께 위증을 하고 경찰로 복귀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본인 죄로 인해 현재 별거 중인 아내와 딸 아이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을 생각하면서,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고구마 한 바구니 세트 같은 조합이다.
보이지 않는 사건, 어수선한 배경, 불안한 심리.
그런 와중에 '납치된 것처럼 들리는 신고 전화'를 받게되고, 조는 마치 본인이 실제로 저지른 죄에 대한 값을 치루는 냥 그 케이스에 필요 이상으로 과몰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작 본인은 내일이면 신고센터를 떠날 운명인데도 말이지)
근데 정작 신고센터에 발이 묶인 조는 사건에 대해 구두로 발화된 언어로 전달 받는 것 외에 다른 전달 경로가 없으며, 산불로 인해 인원 배치가 어려워 필요한만큼 인력 지원을 받지도 못하는데다가, 내일 공판을 앞두고 멘탈은 쿠크다스 마냥 바삭바삭하게 쪼개져있고, 영화는 그런 상태로 이리저리 끙끙 앓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영화도 끙끙 앓고 그걸 보는 나조차 끙끙 앓게 만든다.
그리고 결말부에 가서 그 끙끙 앓던 것들이 희대의 삽질인게 밝혀지면서 조는 파트너와 위증하기로 한 것을 취소하고, 조가 죄의 심판을 받는 것을 중계하는 리포터의 목소리와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사실 어떤 특정한 사건을 매체를 통해 전달받는 우리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90분 정도로 편집해서 본다면 이 영화를 본 것과 같은 답답함이 느껴질 것도 같은게,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사건들의 모습이라는 것은 구두로 발화되는 소리의 형태거나, 언어로 쓰여진 글의 형태 정도가 대부분인 탓이다. (물론 CCTV 같은 장치에 의해 완전히 확보된 재현의 경우에는 예외로 해야겠지만)
이건 단순하게 어떤 범법행위에 대한 것 뿐 아니라, 단순하게 하루에도 여러개씩 이슈화되어 퍼날라지는, 글로 쓰여진 사연같은 것들의 경우에 특히나 그럴텐데, 그런 단순한 일방향적 전달에도 누군가는 이입을 하고, 누군가는 재판을 하고, 누군가는 정의를 내리는 모습을 넘어, 이제는 누군가는 이입하고, 재판하고, 정의 내리는 모습이 뻔한 것이라는 '익숙해짐'의 단계라는 것 까지 와버린거다.
그리고 익숙해짐의 단계까지 와버렸다는건,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의 단계를 이미 무시하고 넘어갔다는거지.
근데 영화와 마찬가지로, 'A처럼 들리는 것'이 꼭 'A'는 아닐 수 있으며, 'A처럼 쓰여진 것'이 꼭 'A'는 아닐 수 있으니, 이런 판단은 희대의 삽질을 만들기도 하고, 영화에서처럼 살인미수범을 피해자로, 전과자이지만 결백한 사람을 납치범으로, 과잉진압으로 살인까지 저지른 경찰을 무죄로, 과잉진압으로 부당하게 살해당한 사람을 그랬어야 할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산불이 나진 않았지만, 자연재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지만, 세상은 항상 이슈가 가득하고, 그 이슈에 대한 전달이 가득하고, 왜곡도 가득하고, 그에 대한 판단들도 가득해서 어수선하다.
근데 이런 일상적인 것을 넘어, 좀 더 확대해석을 해보면, 법이라는 공권력이 판단을 진행하는 기준이라는 것도 결국 직접적인 전달에 의함이 아닌, 구두로 발화된 언어 혹은 쓰여진 언어의 형식이 대부분이며, 그 공권력를 행사하는 기준이라는 것은 쓰여진 언어를 기반에 두고 있다. (심지어 쓰여졌다 지워졌다 수정했다 뭔가를 추가했다 뭔가를 뺐던 히스토리까지 보유하고 있는 구구절절한 언어를 기반에 두고 있지)
그나마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영상매체라는 것이 등장하면서 일부분 와해된 것이 있겠지만, 여전히 최종적인 결정과 그 과정이 언어와 인간에 기반을 두고 있지, 사건 그 자체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은 확실하다.
결국 그 괴리에서의 오차율을 줄이려면 그 어수선함 부터 해결을 해야한다는건데, 그 어수선함이라는 것이 이미 익숙해질 정도로 문제제기가 안되는 부분이니, 이건 잡고 넘어가기에 늦어버린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답답하다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