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itation/Film Review

지옥 (Hellbound, 2021) 리뷰

Mr. Lazy 2021. 11. 29. 16:53

 국내 컨텐츠가 Netflix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게 참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는 현상인데, 사실 이 작품 바로 직전에 '오징어 게임'이 깔아놓은 레드카펫 위에 등장한 대한민국 컨텐츠라 좀 더 주목을 받은 것일지, 연상호 감독이 만들어내는 생각거리들이 그걸 지탱해준건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영화로 옮겨가면서 과거 '돼지의 왕'이라던가 '사이비' 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보다는 좀 감 떨어진건 아닌가 라는 의심을 계속 해왔었는데, 뭐 결국 그 정도는 기대도 안했지만, 역시나 '아직 감 찾기는 좀 멀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게 고무적이었던 것 같다. 

알 수없는 존재가 '성명, 미래의 한 시점, 지옥에 간드아아아아'라는 멘트를 날려주는 '천사의 고지'라 불리는 현상과, 3대 몇 치는지 궁금할 정도로 튼튼해보이는 미지의 존재 3개가 '헬창 3명한테 동시에 원한을 사면 ㅈ된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고지 받은 이를 흠씬 두들겨 패고, 할퀴고, 물어 뜯고, 심지어 손톱 같은 것으로 몸을 관통까지 해주시다가 아이언맨 레이저 빔 쏘듯한 자세를 3단 합체로 보여주면 유기체가 무기체로 변해버리기까지 하는 '시연'이라는 쇼를 보여주는 현상을 가진 지옥의 배경은 현실과는 전혀 동 떨어져 보이기도 하는데, '새진리회'라는 단체가 하는 행위들을 보고 있자면, 그에 대응하는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현실과 동 떨어진 면은 전혀 없어보인다. 

이 현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작품에서 나와있지 않고, 그것이 발현되는 조건이나 규칙이라는 것도 없으며, 미래의 한 시점도 그게 현재로부터 5초 후가 될 수도, 20년 후가 될 수도 있는 설정 탓에 '대체 저건 뭐지?'라는 생각이 들법도 한데, 뭐 던져진 떡밥도 없는 것에 의미부여 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작품이 보여주려는 것에 별 상관도 없는 듯 하고)

이걸 '신의 심판'이라고 하는 집단도, 이걸 '자연 재해'라고 하는 집단도, 심지어 악신의 행위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한데, 곡성 리뷰에서도 썼던 것처럼 '뭣이 중헌디'를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는거지. (현혹되셨다는거다)

사실 지옥에서 보여주는 이 현상들과 그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모습이라는건, 현상 자체가 가지는 모호한 경계에 의해 '종교'라는 것으로 쉬운 도피를 선택하는 듯 하지만, 중요한건 현상 자체가 아닌 그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모습이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뚜렷하게 정치적이다. 

극 중 정진수 의장과 민혜진 변호사의 대화에서 과거 일식을 막으려고 제사장의 명령에 따라 개를 사냥하러 떠났다는 사냥꾼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본인 스스로 연필 한자루 훔쳐본 적 없이 그저 착하게 살면 엄마가 다시 돌아올거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다 고지를 받고 20년 간 공포에 사로잡혀 살아가던 정진수 의장은 인간이 자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미 부여'를 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자처하다가 고지의 당일을 맞이한다. 

고지라는 것이 죄를 지은 이에게 다가오는 천벌임을 주장하기 위해, 인간들은 좀 더 정의로워야 한다는 본인의 사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작 시연을 당해 죽은 것이 아닌, 사이비코인으로 큰 돈 벌어서 해외여행이나 다니는 여느 교주와 다를 바 없는 프레임을 쓰면서까지, 본인 주장에 가장 모순이 되는 것이 타인이 아닌 자신임을 숨기기 위해 조용히 떠나버린다. (사실 애매하게도 결국 죄를 지어버리기는 하지만)

박정자 시연을 생중계 한 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세상은 말 그대로 '죄가 필요한 세상'이 되버린다. 

하다 못해 야동 몇개 하드에 다운받아놓고, 법인카드 몇번 사적으로 썼다고 공개적으로 무릎 꿇고 사죄를 해야하며, 심지어 그 죄 조차도 본인 입이 아닌 본인의 자녀가 고해야하는 능욕까지 당하면서 말이지.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아야 하는' 온전한 이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고지 당해서 시연 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고지와 시연은 그런다고 오는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오는 것이라 믿을 뿐. 

그러니까 이건 인간이 만들어낸 신에 대한 믿음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을 향한 신의 단죄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신에 대한 공포이자, 인간이 만들어낸 온전한 세상이라는 환상이라는거다. 

인간이 가득차 있으니, 신이 낄 자리가 없지. 

교권 파시즘 이라는거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 어디서 많이 본 흐름 같이 보이는건 착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게,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분들이 오히려 더 많은 서민을 양상해버리는, 주택 문제 해결하겠다는 분들이 오히려 집 값 뻥튀기를 최절정으로 튀겨내버리는, 그리고 오히려 주택 난을 만들어 버리는, 이 모순과도 같은 흐름이 전개되었던 것은 우리가 지난 몇년 간 살면서 몸소 겪어왔던 파시즘 광기의 현장이었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려면, 서민이 많아야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고, 서민이 줄면 지지층이 약해지니, 본인들은 약속을 지켰으나 지지층이 줄어드는 기적을 행할 수 있다. 

근데 인간은 기적을 행하는 존재가 아니지. 

그러니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해서, 서민을 더 늘려서 지지층을 확보하자, 그들이 계속 서민이어야 그들의 지지층은 굳건한 반석 위에 지은 집과도 같을테니. 

죄인이 없는 온전한 사회를 만드려면, 죄인이 많아야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고, 죄인이 줄면 지지층이 약해지니, 본인들이 주장하던 온전한 사회가 도래했으나 지지층이 줄어드는 기적을 행할 수 있다.

근데 인간이 만든 종교는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니지. 

그러니 죄인이 없는 온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죄인을 늘려서 지지층을 확보하자, 그들이 계속 죄인이어야 그들의 지지층은 굳건한 반석 위에 지은 집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테니. 

같은 흐름이다. 

서민 없는 사회를 위해 서민이 필요하다는, 죄인 없는 사회를 위해 죄인이 필요하다는 역설. 

그 역설을 위해 생부 둘이 다른 아이들을 길에서 떡볶이 팔면서 애지중지 기르던 박정자 씨는 본인이 시연이 생중계되는 굴욕에 더불어 '생부가 없는데, 죽인거 아니야?' '애 팔에 멍자국이 있는데, 아동 학대 아니야?' 등등의 근거없이 맞춰진 퍼즐조각들로 '죄인' 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시연을 당하고, 장사한지 몇년 만에 다시 유기체가 되신다.

근데 그 역설이 지탱하는 그 '죄'라는 것도 인간이 만든 개념이라는거지.

그렇다고 '이 세력에 카운터를 치려는 집단이 정의를 추구하는건가?' 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네요' 라는 생각이 드는게, 그들은 그저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정도인거지, 그 반론 제기 후에 맞이할 혼돈을 정리시킬 펀치라인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저 상대의 모순 집어내서 반론을 제기하면서 그걸 본인들 스스로 '정의'라 믿는다면, 죄인 없는 사회를 위해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상대 집단과 다를 바 없는 자아도취적 의미부여에 빠져버린 집단이 된다는거겠지. 

신이 고대의 인간에게 죄라는 개념을 전달했다면, 그 당시에 사이버범죄라던가, 금융법 위반 사항이라던가, 탈세라던가, 음주운전이라던가, 퍼블리시티권 같은 개념을 전달한건 아닐테니까. 

그냥 무언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걸 지옥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인간이 창조하셨다. 

그래서 지옥에서 제일 아쉬웠던 부분이 고지 할 때의 멘트였다. (그리고 사실 이 멘트 하나가 이 극을 다 말아먹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고, 더불어 이 멘트 하나가 정말 아직 연상호 감독이 감을 못 찾았다는 느낌을 들게 한 결정적인 한 방 이었다)

'박정자, 너는 5일 후 15시에 죽는다, 그리고 지옥에 간드아아아아아'

대체 인간의 개념인 지옥을 왜 당신이 얘기하시는지, 난 정말 이해가 안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