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itation/Long

블랙워싱 (Racebending) 20211116

Mr. Lazy 2021. 11. 16. 17:17

 이제 좀 정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든지가 벌써 몇년은 된 것 같은데, 아직 시작도 안했다는 식으로 블랙워싱(Racebending)은 점점 대놓고 당연한듯이, 이러다 나중에 가면 그냥 그러려니를 넘어,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되는 과정에 가서 그게 당연하게 되버리는걸 노리고 있는 듯이 날이 갈 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는데, 간접적으로 영국 왕실까지 건드렸던 블랙워싱이 이제 영국 작가의 대작까지 건드리는 상황이 눈에 뻔히 보이고 있다.

사실 원작에서의 기존 설정이 성별이 바뀌거나, 인종이 바뀌거나, 아니면 캐릭터 자체의 성격, 가치관 등이 각색자의 의도에 따라 바뀌는거야 이전부터 벌어졌던 일이긴 한데, 이게 또 긴 시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변화한게 아니라 짧은 시간 동안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방향으로만 각색이 이뤄지니까 이걸 블랙워싱이라는, 흑화라는 단어로 부르는 시점까지 오게 된거겠지.

'그래서 이건 문제냐?'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고민없이 그건 '문제가 맞다' 라고 대답해주고 싶은데, 이걸 문제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기존에 코카시안 이었던 캐릭터를 흑화시키는 것에 대해 문제를 가지는 백인우월주의적인 관점도 아니고, 스크린에 흑인 나오는거 보기 싫어서(사실 보기 싫긴 하지만) 문제삼는 인종차별적 관점도 아닌, 원작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관객으로서의 원작 유지의 바램과, 저런 흑화를 흑인 주동하에 진행하는 행위 자체가 지들 얼굴에 걸쭉한 가래침 뱉는 꼴이라는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안타까움이 섞여있는 것 같다. 

톨키니스트 같이 엄격하게 톨킨 소설에 등장하는 판타지 종족들의 설정을 톨킨이 구분지은대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분들도 있지만, 실제 역사 속의 등장 인물 인종을 바꿔버리는 몰상식한 경우(근데 이것도 많다)를 제외하고는, 창작물이라는 것이 뚜렷하게 인물에 대한 설정을 두고있진 않다. 

예를 들어, 톨킨 소설에 등장하는 '엘프'라는 종족은 코카시언 이라는 인종에 금발이라는 명확한 설정을 구분해놨지만, 대부분의 창작물이라는건 추상적으로 '어떤 왕국에 살던 누구는 어떠어떠한 외모를 가졌었다' 정도의 설정이니, 사실 굳이 따지면 그 설정이라는 것은 각색이 가능한 부분인 것은 부정하기 애매한 부분인데, 우리가 법에서 규정하고 있어서 하는게 아닌 관습적으로 그래왔어서 하는 관행들처럼 이 캐릭터라는 것도 어느정도의 관행이라는 것은 가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산타 할아버지만 해도 애초에는 산타 할머니도 있었고, 산타 요정도 있었던 상징적인 개념이었는데, 코카콜라 광고가 이를 산타 '할아버지'로 굳혀버렸듯이, 과거부터 이어져온 이 캐릭터 라는 것은 몇몇 애니메이션, 영화제작사들의 역할이 컸고, 그 대형회사들이 부여한 시각화된 캐릭터의 성질이라는 것이 '원작'이라는 착각으로 퍼지게 된건데, 굳이 따지자면 이 대형회사들이 부여한 캐릭터의 성질이라는 것부터 태클을 걸 수도 있겠지만, 그 태클을 우습게 막아버릴 수 있는 것이 '대중화'라는 측면이다. 

그래 나 같은 대중들이 어린시절에 그 대형회사들이 부여한 성질을 가진 캐릭터가 연기하는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보면서 자랐고, 아직까지도 어린시절에 봤던 그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한장면 한장면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그 기간에 쌓인 '추억'이란게 있다는거다. 

그러니까 인어공주를 생각하면 당연히 붉은 머리의 백인 여자아이가 생각난다는건데, 이게 갑자기 인어같이 생긴 흑인이 되버리면 어린시절 추억이 깨져버리는 것은 둘째 치고, 인어공주라는 창작물 자체가 생선비린내와 흑인 암내 섞인 알 수 없는, 변질된 카푸치노보다 더 지독한 냄새가 나게 되는 것 같아서, 이미 깨져버린 추억은 둘째치고, 앞으로 인어공주라는 창작물은 인생에서 다시 찾아보지 않게 되버리는, 원작 훼손을 넘은 원작 폐기의 단계까지 가버리게 된다는거다. 

추가적으로 저 인어 닮은 흑인 나오는 인어공주를 보고 자라나는 아이들과 과거 붉은 머리 백인 여자아이가 등장하는 인어공주를 보고 자라났던 우리들은 창작물에 등장하는 '애리얼'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세대와의 충돌도 있을 수 밖에 없겠고, 그 충돌을 일으키는 두 세대 간은 인어공주라는 창작물을 통한 라포 형성도 어렵게 되어버리겠지. 

그러니까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세대 간 단절을 시켜버리는 행위가 되버린거다.

근데 그것보다 더 궁금한건, 저렇게 흑화를 주동하고 있는 분들은, 저런 원작 침범의 행위가 본인들의 가치를 오히려 갉아먹는 행위라는걸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저래서 '흑인은 머리 쓰지 말고 몸 쓰라고 한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근데 그걸 정말 모르는건지 궁금하다는거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었고, 인도 신화가 있었고, 북유럽 신화가 있었듯이 아프리카도 신화가 있고, 설화가 있으며, 구전되어 오는 흥미로운 스토리들도 있을텐데, 굳이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낸 창작물에 '편승'해서, 굳이 그걸 흑화시켜가면서, 그 창작물을 향유했던 세대들의 추억이란걸 파괴하면서, 본인들 면상에 가래침을 뱉어가면서 주권을 주장할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생기는거지. 

K-Pop을 정작 좋아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다른 문화권에 만들어낸 창작물의 형식에 한국인이 편승해서 만들어내는 K-Culture라는 것을 보면서 '나도 그렇지만, 한국인은 참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라는건 ㅈ도 없구나'라는걸 다시 한번 확증하는 것처럼, 그들도 사슬에 묶여 노예로 팔려나가던 그 시절에 대한 열등감에 그 자부심이라는 것이 묻혀버리는걸까?

'정작 진보적으로 깨어나지 못한 것은 누구일까?' 라는 질문을 해봐야 한다.

그리고 흑화할거면 좀 이쁘게라도 생기던가. 시발.